자유를 위해 총을 들었다. 한밤중에 끌려가 포로가 된 그녀들이 원하는 건 자유였다. 이라크 쿠르디스탄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태양의 소녀들’이다.
‘태양의 소녀들’은 지난 2014년 8월, 극단주의 무장조직 IS에 참극을 당한 야지디족 여성들이 직접 총을 들고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는 절제된 영상과 음악으로 오히려 숨 막히는 긴장감을 불러온다.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적이고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고, 충돌 직전의 상황에 엄습하는 고요함으로 소리 없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전한다.
여성 전투부대 ‘걸스 오브 더 썬(Girls of the Sun)’에서 전사로 다시 태어난 여성들은 모두 포로 출신이다.
주인공 ‘바하르’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이 있었고 가족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한밤중 IS의 기습으로 아버지와 남편을 잃었다. 끌려간 곳에서 그들이 아들을 데려갔고, 여동생은 성노예 포로 생활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영화는 총을 든 여성들을 이끄는 사령관 바하르의 모습과 포로로 끌려간 그의 과거 모습이 교차된다. 아들을 되찾기 위해 살아야만 했던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탈출해 직접 폭력에 맞선다.
전쟁터이지만 그녀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두려움을 없애고 스스로를 다잡듯, 노랫말은 그녀들의 다짐이자 소망이다. 결연한 의지를 전하면서도 한편으로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흘린 피는 모유가 될 것이며, 우리의 죽음으로부터 새 생명이 솟아오를 것이다. 새로운 날이 밝을 것이다. 여성과 생명, 자유를 위해.”
대치하고 있는 무장조직을 향해 선공격에 나서는 바하르가 동료 여성부대원들을 독려하는 장면도 뜨거운 울림을 전한다. 그들이 죽인 건 포로였던 그녀들의 두려움뿐이다.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승리”라는 바하르의 말은 폭압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그녀들의 용기와 의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극 중에는 또 한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프랑스 종군기자 ‘마틸드’다. 그녀 역시 다른 전쟁의 현장에서 한쪽 눈을 잃고, 남편이 세상을 뜨고 딸이 공황장애를 갖게 된 슬픔이 있다. 마틸드는 진실을 써달라는 바하르 곁에서 그녀의 이야기와 여성부대원들의 처절하고 용기 있는 역사를 기록한다.
실화가 주는 힘은 강하다. 참담한 현실의 폭력과 아픔 그리고 분노, 자유를 향한 갈망을 담담하지만 뜨겁게 그려냈다. 하루아침에 가족들을 잃고 포로가 돼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영화를 통해 마주한 그녀들의 용기와 연대를 보고 있으면 안타까움과 함께 어느새 숙연해진다.
마틸드의 마지막 긴 독백은 쓰라림과 함께 여운을 남긴다. 하룻밤에 7000명 이상의 여성이 붙잡혀 성노예가 됐고 그들을 여성이라고 할 때 참을 수 없는 진실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은, 폭력에 의해 정체성이 소멸되고 무력한 존재가 되어버린 어린 소녀들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태양의 소녀들’ 제목이 다시금 떠오르는 대목이다.
제71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다. 이란 출신의 배우 골쉬프테 파라하니와 2015년 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엠마누엘 베르코가 주연을 맡았고, 여성 감독인 에바 허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2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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