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얼음, 기온 따라 온도 따라 얼기도 하고 녹기도 한다. 그런 얼음이 영하의 강추위엔 꽁꽁 얼어 고체 상태로 단단한 바위 같기도 하지만 영상의 날씨나 높은 온도에서는 허물, 허물 녹아 액체상태의 물이 되기도 기체 상태로 대기에서 떠돈다.
그런 얼음위에 집을 지었다면 그 집은 얼음이 녹으면 집의 수명도 끝이 나 물에 잠겨 버린다. 그렇듯 사람에게 권력 또한 얼음 위의 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얼음의 두께에 따라 집의 안전성에 차이가 있듯이 권력의 정도에 따라 그 주변을 에워싼 사람들도 달라진다. 
그래서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면 특별한 관계가 없는 한 보통사람들은 대부분 주변에서 떠난다. 그래서 정승과 정승 집 개 이야기도 있다. 정승 집개가 죽으면 정승을 위로하기 위해 개죽음에 조문객이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고약한 정승이 죽으면 사람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권력에 대한 인간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말하고 있다.
얼음위집이 얼음의 두께에 따라 좌우되듯 인간들도 권력의 정도에 따라 모여 드는 사람들이 다르다.  그래서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얼음위집과 같다는 것 잊고 권력 누린다고 귀를 막고 눈을 감고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헛기침이나 하면서 팔 휘저으며 거리를 활보해선 안 된다. 권력 잃었을 때를 생각 잘해야 한다. 권력 얼음위의 집과 다르지 않다.
인류역사 동서고금 그 언제 어디에서도 그랬지만 요즘 위정자 양반나리들 왜들 그러는지? 욕심이 지나친 것 같아 실로 안타깝다. 
중국 제나라시대 재상 맹상군이 풍훤 때문에 고향사람들로부터 내침을 당할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를 귀담아 둘 필요가 있다. 한번은 맹상군이 풍훤을 자기 고향 설 지방에 가서 빚을 받아 오라고 했다. 그러자 “풍훤이 빚을 받아 어떻게 할까요?” 물었다. 맹상군이 “우리 집에 없는 것을 사오라” 했다. 
풍훤이 설 지방으로 가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빚 문서를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맹상군이 어떻게 된 것이냐 묻자 풍훤이 “빚을 모두 받아 분부대로 이걸 사왔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예 바로 이것입니다” 하고 의義를 말했다. “재물 대신 의義로써 민심을 얻게 됐으니 재상에게는 재물보다 더 큰 이득을 얻은 게 아닌 가요” 그렇게 말했다. 맹상군은 화가 났다. 
그 얼마 후 맹상군이 부패에 연류 재상직위를 박탈당하고 빈손으로 고향 설 지역으로 돌아가게 됐다. 맹상군이 관직에 있는 동안 권력만 믿고 고향사람들에게 민심을 잃는 짓을 너무 많이 했기에 고향으로 가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됐다. 그러나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돌팔매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도 고향이 좋겠다 싶어 마지못해 고향으로 가기로 했다. 
고향이라 해 봐야 따뜻이 맞아 줄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을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갔다. 그런데 고향사람들이 모두 길로 나와 대환영을 하며 서로 모시겠다고 했다. 그 때 맹상군이 감격 풍훤이 사 놓았다는 ‘의’가 무엇이었던가를 알게 됐으며 돈과 권력만 알던 자신이 그 동안 얼마나 어리석게 살았는가를 풍훤을 통해 깨우쳤다. 맹상군처럼 앞날도 모르고 요즘 자신의 권력만 믿고 어리석게 언행 함부로 하는 그들 정신 차렸으면 한다. 무엇보다 솔직하고 정직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예상치 못한 일들로 무엇이 정의인가를 두고 대 혼란을 겪고 있다. 불의가 정의 같고 정의가 불의 같아 자신을 의심한다.
이러다 세상이 어떻게 될까 그게 걱정된다. 잘 못된 위정자들 편 가름보다 불법 적법 확실히 하여 정의사회 이루어 모두가 훌륭한 지도자로 남는 게 좋다. 권력 재력 있을 때 잘 한 게 좋다. 권력을 쥔 지도자는 사람 볼 줄 알아야 한다. 사람 볼 줄 모르면 국민의 소리라도 듣고 관대해야 할 땐 관대하고 엄격해야할 땐 엄격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훌륭한 지도자다. 권력! 얼음위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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