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서울시내 한 노숙자가 난 유기견만 못해요. 젊었을 땐 국가나 주위사람들에게 조금도 누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성실하게 살아 나름대로 크지는 않았지만 사업체도 하나 가지고 수십 명 직원을 두고 살았었는데 20세기 말 IMF인가하는 한국에 닥친 경제위기 때 실패 빚 때문에 결국 집을 나와 노숙자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라며 하는 말이다.
 그는 사업을 할 땐 세금도 제법 내고 수십 명 직원이며 그들 가족도 먹여 실리는 등 좋은 일도 했었으나 막상 망하고 보니 남은 건 빚이요 욕먹는 것밖에 결국 집을 나와 노숙을 해야만 했다.
 요즘 개보다도 못한 인간쓰레기가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노숙자란 말 그 말 듣는 게 그렇게 싫다. 젊었을 때 열심히 노력하고 살지 않고 젊어서 흥청망청 살다 저 꼴 됐을 것 뻔하다. 그런 손가락질 받는 게 그게 조금은 억울하다. 그 손가락질 뒤에는 증오 또한 적지 않다. 
 증오하는 사람은 베풀 줄 모른다. 어쩌다 저렇게, 아니 어떻게 살았으면 저 꼴이 됐을까? 그런 생각을 갖고 더욱 더 냉정하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노숙자에 대해 이유 불문하고 증오 더 나아가 독기를 가득 품은 독사처럼 생각을 하며 증오한다. 애완견은 그만 두고 유기견만 못한 생각을 갖고 본다.
 유기 견은 보호 센터를 만들어 돌보며 때때로 예방접종은 물론 치료를 해 주고 죽으면 장례를 치러준다. 반면 노숙자에겐 숙식을 제공하는 시설은 그만두고 병이 들어도 누구하나 돌보지 않고 방관한다. 방관으로 그치지를 않고 범죄자 취급한다. 독 벌래 대하듯 대한다. 
 노숙자들이 기거하는 서울역이나 종로 3가 지하철 역 또는 파고다공원주변에서 절도 등 범죄가 발생하면 노숙자 행위가 아닌 가 색안경을 끼고 대한다. 그렇다 보니 유기견만 못한 것 사실이다. 그래서 유기견이 부럽다는 말 나올 수밖에.
 물론 유기견만 못하지 않은 노숙자가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아무렴 인간이 개만 못해서야, 지금 특히 가진 자들이 노숙자와 유기 견을 두고 하는 행태로 보아서는 노숙자들 입에서 그런 말 나오는 것 지나친 것만은 아니다 라 이해가 된다.
 한국엔 진돗개를 신처럼 섬기는 종교가 있다. 그 종교에선 진돗개를 자식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 진돗개를 믿는 신자들이 모여 진돗개 생일상을 차려놓고 기도는 물론 죽으면 장례도 치러 준다. 그런 세태에 노숙자에게는 사람들도 국가도 냉소를 보내며 독벌레취급을, 그래서 유기견이 부럽다는 말을.
 그 노숙자 말을 들으며 부처가 했다는 말을 떠 올려 보았다, 부처가 증오는 사랑으로 치유된다. 오해는 재치와 절충 화해와 상대방의 관점에서 보려는 따뜻한 마음으로 해결해야한다는 말을. 또한 달라이 라마는 ‘나의 이 고통이 다른 무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의 고통을 대신하게 하소서 이 고통을 경험하면서 이와 비슷한 고통을 겪을 지도 모르는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을 구원하게 하소서’ 라고 했음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노숙자를 껴안아야 한다.
 그 노숙자는 노숙자라고 모두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개중엔 나쁜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열심히 살다 어느 순간 잘 못된 일로 마지막 선택한 것이 거리의 노숙자가 됐을 수도 그렇게 이해, 유기 견 보다 못한 인간취급만은 하지 말았으면 그런 심정이라고 어느 노숙자가 하는 하소연을 들을 수가 있었다. 
 같은 시대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 졌다. 흉악범도 인간은 인간이고 제아무리 똑똑한 재능을 보인 개라도 개는 개인 점 간과해서는 안 된다. 노숙자를 유기견만도 못한 취급해선 안 된다. 노숙자에 대한 국가적 차원에서 대책을 심도 있게 논의해 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노숙자도 한 인간인데 유기견이 부럽다는 그런 말이 나와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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