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 용 옥

한형석의 ‘다이글로시아 Diglossia’ 전시 오픈에 다녀왔다.

800년만에 목성과 토성이 만난다는 추운 겨울밤 달은 시리게 아름다웠다.

성남시 신흥동 소재 ‘재미JM 갤러리’ 야외 공간에 내걸린 푸른빛 긴 현수막 속에서 한 인물이 함께 간 우리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2021년 1월 20까지 진행 중인 전시에 작가로 선을 보인 한형석은 20년 이상을 재소자로 수감 중에 있는 무기수이다.

코로나로 거리두기가 불가피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시장엔 정작 주인공인 작가는 올 수가 없다.

기구한 작가의 처지에 대해 세속적인 호기심을 보이는 관람객에게 이 전시 기획을 혼자 도맡아 세상에 내보낸 성남문화재단 전시기획부 박동기 차장은 이곳에서 과거는 중요하지 않으며 현재형인 그를 보아달라고 주문한다.

독학으로 그린 그의 그림은 강렬하고 독특하며 그림 못지않게 작품 수가 많은 시화가 오래 마음을 붙잡는다.

수인 생활을 하는 그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 작가로 독자적인 행보를 하도록 도와준 사람의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극적이다.

성남문화재단 전시기획부 박동기 차장이 바로 그 장본인이다.

수신인이 없어 휴지통으로 들어갈 뻔 했던 한 재소자의 그림에 대한 갈망을 읽고 미술관 전시도록을 보내면서 그와의 서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한다.

1평 남짓한 폐쇄된 공간에서 “온 몸이 다 젖도록 그칠 줄 모르는 어둠 속에서 멍든 한낮을 견디는” 외로움을 극기하며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한형석의 존재에 대한 진지함에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며 5년 동안 지원을 이어온 박 차장이 지닌 인간에 대한 무한대의 믿음과 따뜻한 미덕이 경이롭기만 하다.

어느 결엔가 서로의 시에 교감하는 문우로 발전한 두 사람의 인연이 만들어낸 오늘의 전시는 작품 이상의 감동적인 전율로 온다.

우리 동네는요 별이 다니는 길목 아래에 있는데요, 고양이의 반짝이는 눈처럼 별은 밤에만 쏘다니는 게 아니라는 걸 모두 알고 있어요 …<중략>…

우리가 살아갈 길을 미리 알고 보여줄 수 없는 것처럼 별들도 지나온 길만을 한 줄의 흔적으로 잠시 남기는 거래요.

길은 누군가 지날 때 비로소 길이 된다고 … <중략>…

별은 고양이 발자국보다 가벼워서 한참을 나는 거죠. 낮달처럼 조금은 쓸쓸하지만요. < 한형석, ‘별이 빛나는 낮에’ 중에서>

누군가 길을 내고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무심하게 하루를 보낸다.

햇살에 두 눈을 찡그리고 주위의 풍경에 시선을 둔다. 날카로운 연필 선이 지나간 귓등의 오소소한 한기. 깊이를 알 수 없는 허방 너머에 가 닿아있는 무위한 눈, 얼굴선이 지워진 채 한여름 군중 사이를 혼자만 겨울로 횡단하는 인물.

전시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각자 서로의 길을 내며 가고 있었고 우리는 그 흔적에 잠시 머물렀다 나온다.

폐색과 감금 속에서 한 영혼이 쏘아올린 아스라한 빛을 발견하고 가여워하고 애달파하며 온기의 손길을 내밀어 오늘 열린 공간에 나오게 한, 한 사람의 두려운 행보와 2901호라는 익명에서 한형석이라는 고유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현장에 나온 더 두려운 한 사람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행보가 60년 뒤인 2080년에야 볼 수 있다는 오늘 밤 크리스마스 별보다 더 반짝인다.

전시장 밖은 코로나로 더 얼어붙은 한겨울 세밑이었지만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고 노래했던 이육사의 시가 떠오르는 더 맑고 투명한 새해가 그래도 곧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작가가 올 수 없는 쓸쓸함 속에서도 작은 불씨 하나를 안고 가파른 길을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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