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벙글거리는 봄날에
햇볕이 꽃숭어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 오후에
개미들이 떼를 지어
에움길을 바글바글 메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여 저 많은 병졸들이
셀 수 없이 다 모였는지
그 짧은 다리로
서로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야단입니다
행여나 눈먼 내 발걸음이 밟을 세라
사이사이 조심히 걷고 있는데
어느 도장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검은 구두 검객이 제 길만을 열겠다고
개미무사들을 꾹 꾹 짓이기는 게 아니겠습니까
꼼지락거리는 모든 검은색들이 화들짝 놀라더군요
개미무사들이 길바닥에 거뭇거뭇 터져 있을 때
햇볕에 등을 내밀고 바람과 장난치던 꽃들의
휘둥그레진 눈이 파르르 떱니다
이제 막 움터 오르는 어린잎들도
태연히 걸어가는 구두 검객 때문에
오한에 들더군요.
가끔은 그래요
집밖을 나선 자식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곡주의 알코올 순도에 젖어
객잔을 나서며 싱긋 웃어주던 단골무사들의 발길이 뜸해지면
칼날을 갈던 내 손이 멈칫 안부를 묻는답니다
안부
상록마녀
-상록객잔-
- 기자명 경기매일
- 입력 2021.01.1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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