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손흥민에 관한 소식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손흥민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라인 커뮤니티 마다 술렁술렁한다. 한 골 넣으면 평타, 두 골 정도 넣어야 “오늘 좀 잘했구나!” 한다.
이번 시즌 손흥민의 성적은 월드클래스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수비의 최종라인 밖에서 뒤 공간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상대의 최종 수비라인을 부수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대일 찬스는 웬만하면 놓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손흥민을 응원하는 것은 메시나 호날두를 응원하는 것처럼 국적을 떠나 세계 최고의 선수를 응원하는 기분이다.
손흥민이 월드클래스급 활약을 하면서 “역대 한국최고의 축구선수는 누구냐?”라는 소위 팬들의 ‘손차박’ 논쟁도 슬슬 정리되는 듯하다. 요즘의 폼을 보면 누가 뭐래도 한국축구사의 전설 같은 존재인 차범근의 위상을 넘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니까 말이다.
차범근이 독일의 분데스리가에 진출했을 때 그에 관한 국민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뛸 때에도 그가 우리나라를 대표해 뛰는 것처럼 응원했었는데 지금부터 40년 전에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던 차범근을 축구팬 모두 얼마나 자랑스러워했을까!
물론 지금처럼 차범근의 활약을 실시간 중계를 통해 볼 수 있던 시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KBS나 MBC와 같은 국내 방송사에서는 차범근이 뛰는 분데스리가 축구경기를 녹화 중계하였다.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1979-1980년 시즌 그의 전설 같은 활약은 1980년 일간스포츠 박재균 기자가 쓴 ‘백넘버 11’(삼성출판사, 1980)을 통해 자세히 소개되었다. 지금은 구하기 힘든 차범근의 프랑크푸르트에서의 활약을 소개한 책이다.
최고의 스포츠 스타 차범근에 대한 관심은 아이러니하게도 전두환 정권의 3S(Sports, Screen, Sex) 정책으로 국내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되면서 사그라져 갔다. 언론이 새로운 스포츠 스타들에 주목하자 자연 독일에서 활약하는 차범근은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음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1990년 분데스리가에서 10년에 걸친 선수생활을 마친 차범근은 1년간의 지도자 생활을 더 하고 귀국했다. 은퇴하던 해 그가 국내 신문에 썼던 글을 모은 에세이집이 발간되었다. ‘내가 너무 못생겼다구요’(우석, 1990)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차범근은 세계적 축구선수이자 좋은 에세이스트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글은 막연하고 뜬 구름 잡는 허황된 이야기도,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삽화와 같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에 담고 있다.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의 삶이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치열하고 고독한 승부의 세계에서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그가 얼마나 노력하였는지를 거창하고 화려한 수사 없이 알려준다. 이 책은 차범근이 1998년 개최되는 월드컵대표팀의 감독을 맡고 나서 일종의 증보판인 ‘슈팅 메시지’(우석, 1997)와 ‘그라운드 산책’(우석, 1997)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다시 발간되었다.
손흥민의 활약에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글은 물론 관련한 유튜브 콘텐츠까지 넘친다. 요즘 말로 “가슴이 웅장해 지는” 이런 콘텐츠를 보면서 갈색폭격기 차범근의 따뜻하고 소박한 글이 담긴 책을 펼쳐 보게 된다.
한때 여러 신문에 연재하였던 그의 글은 유튜브 시대가 된 요즘에는 통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왠지 그는 손흥민에 대한 찬사 말고도 힘들게 축구를 하는 축구선수들과 순수하게 축구를 사랑하는 축구팬들까지도 보듬어 안을 뭉클하고 감동적인 글을 선물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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