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사람들의 일상은 한 걸음으로 시작된다. 한 걸음이 고작 20센티 내외이지만 그 보폭으로 걷다보면 하루에 20킬로미터도 걸을 수 있고 50킬로미터도 걸을 수 있다.
내 고향은 영암 금정이다. 고향에서 48킬로미터 떨어진 광주에서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를 졸업한 그 해였다. 졸업을 한 그 다 다음날이었다. 
당시는 시계가 흔치 않아서 읍면동사무소에서 정오와 밤 10시가 되면 사이렌을 울렸다. 정오 사이렌 소리를 듣고 광주 서동 대성초등학교 앞에서 출발 걸어서 고향에 갔다. 물론 혼자였다. 
광주를 출발 산 고개 길을 넘어 남평을 지나 금천에서 영산강둑을 따라 영산포읍에 도착 세지면 동창을 거쳐 고향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6시 30분쯤 됐다. 그러니까? 정확히 48킬로미터를 여섯 시간 삼십분 걸려 걸어서 고향집에 도착했다. 
또 그 다 다음 해 여름방학을 맞아 8월 초 홀로 제주도로 무전여행을 갔다. 제주에 도착 제주시경찰서 앞 관덕정에서 하루 밤을 자고 이튼 날 아홉시 그곳을 출발 밤 여덟시 반쯤에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해발 1950미터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 도착했다. 그리고 자고 새고를 반복하며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서 제주도를 일주했다.
광주에서 고향집 영암까지 48킬로미터도, 제주시내에서 해발 1950미터 높이의 한라산 백록담까지 등산도 제주도 일주도 한 걸음에서 시작됐다. 
광주에서 고향집까지 48킬로미터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또 해안도로를 따라 제주도 일주는 물론 제주시내에서 한라산 백록담까지는 산악경사지로써 또한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
광주에서 고향 가는 길도, 제주도 일주와 험준한 산길 한라산 백록담 가는 길도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목적지까지 가는 것 한걸음 한 걸음으로 해냈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동네 고샅길을 오가는 정도였다. 학교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정도였다. 그런 한 걸음 한 걸음으로 산을 오르고 고향을 갈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고향을 가겠다는, 제주를 일주하고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겠다는 생각 보다는 어쩌면 한걸음 한 걸음 옮기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고향을 걸어서 갈 수 있었고 제주도를 일주하고 한라산 백록담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때는 목적을 위해 한 걸음씩 옮기는 발걸음이었으나, 살면서 가끔 힘이 들 때면 그 때를 떠 올려 본다. 많은 사람들이 광주에서 고향까지 걷는 일 쉽지 않다고 했다. 걸을 필요도 없지만 그 먼 길을 어떻게 걷느냐고 했다. 사람의 생각과 눈은 멀고 게으르다.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은 멀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목적지에 다다른다. 그래서 고향도, 제주도 일주도, 멀지 않았고 한라산 백록담도 높지 않았다. 광주에서 고향까지 48킬로미터 떨어진 것도, 제주시에서 시작 한림, 서귀포, 성산포해안도로를 따라 함덕을 거처 다시 제주시로 돌아오는 길도 그렇게 멀지 않았다. 또 한라산 백록담 그 높이 1950미터 그것을 생각하면 높고도 멀어 감히 걷는다는 것 엄두도 안 났지만 한걸음이면 된다. 라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웠다. 
한 걸음 한 걸음만을 생각하는 순간 고향도 한라산 정상도 지척이었다. 삶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루하루 그 때 그 때 일에 충실하다 보면 무거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즐겁지 않는 일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반면 오늘도 힘들게 일을 해야 한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그런 생각에 빠지다 보면 삶이 정말 힘들 것이다. 내일을 걱정하고 먼 훗날의 삶을 걱정하다 보면 고통이라는 심리적 부담에 함몰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떨고 그때그때 삶을 위해 충실히 살면, 삶이 한결 가벼워 질것이다.
걱정과 고통의 대부분은 생각에서 온다. 먼 곳도 높은 곳도 생각 일뿐 한 걸음 한 걸음이면 된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 딛는 가벼운 생각이면 걱정과 고통도 벗어나 삶이 가벼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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