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의 아내이자 삼남매의 어머니로 살아왔던 그가 팔순 넘어 위풍당당하게 세상에 나왔다.
83세, 윤명숙. 누군가의 아내와 어머니를 넘어 독보적 에세이스트로 ‘나로 말할 것 같으면─Yes, I am’를 출간했다.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충북 청주여자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에 입학하였으나 1학년을 마치고 중퇴했다. 20세에 화가 박서보와 결혼하고 아내와 엄마로만 지냈다. 미술협회전, 홍익여류화가전 등에 그림을 출품하기도 했으나 붓을 놓은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2006년 ‘문학미디어’에 단편 ‘오렌지의 기억’을 발표한 후 꾸준히 글쓰기를 해오고 있다.
“나는 요즘,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쉽게 그릴 수 있는 소묘에 재미 붙였다. 주위에 널려 있는 잡동사니 중에서 만만한 놈을 골라 그린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오랫동안 방치한 감각이, 종이 위에서 연필을 움켜쥐고 우왕좌왕하는 손이,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신바람 나게 그렸어도 영 신통치 않다. 그래도 잡동사니들과의 잡담이 즐거워서, 어머니와 할머니의 손길이 그리워서 나는 계속 그린다”(p.6, 「작가의 말」중에서)
이 책 ‘나로 말할 것 같으면’은 삶의 이력에서 나오는 연륜을 회한이 아닌 유쾌함 가득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코로나 시국과 노년의 삶을 담담히 서술하다 과거 전쟁 통의 피난생활, 전후의 궁핍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끈다.
“결혼하고 4년 동안, 6개월마다 정신없이 이사를 다니다가, 처음으로 내 집이라고 장만한 곳이, 신촌에서도 제일 환경이 고약한 철길 옆이었다. 화물 기차가 하루에도 몇 번씩 연탄가루를 휘날리며 지나다녔다. 우린 바로 그 철둑 밑에 방 둘 부엌 하나 딸린 무허가 집을 산 것이다. 연탄 공장 바로 코앞, 먼저 살던 집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조금 비켜난 것은, 경제력이 없었기 때문이다”(p.233, 「철길 옆 판잣집」 중에서)
경제력이 없던 가장이었지만 단색화 거장으로 이제 높은 작품값도 자랑하는 박 화백은 “현대미술 운동한답시고 가정을 알뜰히 보살피지 못한 나 대신 아이들 대학 갈 때마다 부엌에서 새우잠 자곤 하던 당신. 틈틈이 글을 쓰는 것 같더니, 자랑스럽다. 내 아내”라고 응원했다.
부부는 닮았다. 50여년간 ‘묘법’을 그리며 팔순이 넘어 단색화로 봄날을 맞은 남편 박서보 화백처럼 부인 윤명숙도 팔순이 넘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욕심이 있다.
“단언하건대, 난 죽기 전에 신나게 글을 써보고 싶다. 더 욕심내자면 그림도 다시 그리고 싶다. 그리하고도 또 남은 욕심이 있다. 나의 작은 그림들을 모아 전시회도 열고 싶다. 아니면 글과 그림을 모아 자그마한 화집을 꾸며보고 싶다.버킷 리스트 1이다” 300쪽, 알마 출판,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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