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이불의 작품은 여전히 앞서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2일 서울시립미술관(관장 백지숙)서소문본관 1층에서 개막한 이불의 개인전 ‘이불-시작’은 작가 이불이 어떻게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그동안 ‘풍문으로만’ 떠돌던 이불 작업의 모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전시”라며 “이번 전시는 초창기 이불 작가의 활동을 복기하면서 작가의 현재 작업은 물론이고 지나간 시대의 문화적 자원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 2020년 전시의제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서는 이불 작가 초기 활동의 ‘퍼포먼스 기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초로 공개되는 드로잉 50여 점과 이번 전시를 계기로 재제작한 참여형 조각 1점, 퍼포먼스 비디오와 사진기록 70여 점, 조각과 오브제 10여 점이 소개된다.
당대의 여성 작가이자 청년 작가였던 이불의 지난 작품과 자료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앞선 시대감각이 충격적이다. 여성과 여성 신체를 재현하는 방식 등 작품의 주제 의식과 비판적 지점은 지금 현시대에서도 촌스럽지 않고 독창적이고 유효하다는게 놀랍다.
작가가 활동을 시작하던 1980년대 후반부터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불의 ‘소프트 조각’, 대학 재학시절 드로잉 첫 공개
1전시실은 작가 이불의 ‘소프트 조각’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존의 조각 전통을 탈피하기 위해 소프트한 재료와 함께 인체의 재현 방식을 실험하던 대학교 재학 시절 작품 관련 기록과 드로잉이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1988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이고 2011년 재제작한 ‘무제(갈망)’ 연작과 ‘몬스터: 핑크’를 포함한 조각 3점은 사람의 살처럼 부드럽고 꿈틀거리는 불완전한 존재를 재현한다. 이와 관련한 드로잉 작품 6점에는 퍼포먼스에서 감지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움직임과 에너지가 표현되어 있다.
전시실 2는 ‘퍼포먼스 영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거대 블랙박스이다. 이불은 1988년 ‘갈망’부터 1996년 I Need You(모뉴먼트)’까지 총 33회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실연했다. 최소의 편집으로 보존된 12점의 영상 기록과 함께 시대적 풍경을 현재화하는 요소로 ‘바람’이 제시되는 이 전시실에서는 이불의 퍼포먼스가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불의 퍼포먼스는 1988년 첫 개인전을 발표한 이후부터 사람의 움직임과 행위를 통해 ‘소프트 조각’ 개념을 시작했다. 1990년부터 폭발적으로 발표한 일련의 퍼포먼스에서는 소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고, 방독면을 쓰거나, 둔부를 과장한 레슬러 복장의 캐릭터들을 통해 상실한 대상에 대한 애도의 내면화 과정을 겪는다.
이불이 활동하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한국 사회는 대중문화 범람, 국제화 물결, 세기말적 두려움 그리고 새로운 세기를 기대하는 희망이 상충하는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었다.
 전시실 3은 사진 기록 60여 점, 미공개 드로잉 50여 점, 오브제와 조각 10여 점 등 풍부한 작품과 자료를 통해 이불의 퍼포먼스를 더욱 다채롭게 감상할 수 있다.
30년 전에 있었던 사건과도 같은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이 빼곡하게 전시된 이 공간은 완결된 사건과 역사에 대한 ‘기록’으로서 퍼포먼스의 의미를 환기한다.
로비에 설치된 작품 ‘히드라’는 1996년 처음 소개된 풍선 모뉴먼트를 2021년 버전으로 재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부채춤 인형, 왕비, 여신, 게이샤, 무속인, 여자 레슬러 등 복합적인 여성 이미지로 분한 작가의 초상이 인쇄되어 있고, 구조물에서 사방으로 연결된 펌프를 관객이 직접 밟아 바람을 불어넣어 풍선을 일으켜 세우는 참여적 조각이다.
이번 전시는 30여 년 만에 다시 공개되는 방대한 작품과 자료의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한글과 영문이 분리된 50여 페이지의 리플릿을 제공한다.
4월 중에는 이불의 초기 작품을 연구하는 에세이, 사진기록과 자료 등이 수록된 450여 페이지의 모노그래프가 출간된다. 전시는 5월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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