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벅저벅 자갈밭 길 신발만 바삐 간다
신발 속엔 발이 없다
다리도 물론, 몸통 머리통도 없다
신발은 저를 구기며 앞만 보고 간다
멀리 아지랑이 피는 들판, 앞은
꽃빛 강물이 가로막고 있다
훤히 보이는 저 풀잎 저 포근한 들판
꽃비늘 찰랑거리는 수면
신발은 이내 젖어들고
없는 발, 없는 몸통
없는 머리통이 수면을 밟아 나간다
무릉으로 가는 푸른 길 언제나 잠긴 채 태연했다
젖은 신발 질척이지만 자갈을 꼭꼭 밟고 간다
자주자주 건너뛰며 길을 끌어당겨 보는데
무릉은 검은 고무밴드처럼 늘어나기만 한다
구멍 나고 더러워진 신발 속에서 바람이 든
발이 차가워지고 있다
거실 창 앞에서 맨발로 우두커니 신발을 따라가던
어떤 어스름한 우두커니가 와 흠칫한다
꽃비늘 노는 저편 푸른 길의
깊은 유리벽, 강물로 뛰어드는 것을
무릉도원 - 신발
상록마녀
-하루가 하루로 하루를-
- 기자명 경기매일
- 입력 2021.04.0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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