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반도체 패권 경쟁’에 뛰어든 가운데 우리 정부가 내놓을 반도체 산업 종합 지원책에 관심이 모아진다. 주요국들은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까지 겹치자 일제히 ‘반도체 자립화’ 총력전에 나선 상황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세금, 법적 문제 대응부터 통상 전략까지 담은 전방위한 지원책만이 주효할 것으로 보고 있다.
1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종합정책인 ‘K-반도체 벨트 전략’은 다음 달쯤 발표될 전망이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 9일 성윤모 장관 주재로 ‘반도체협회 회장단 간담회’를 열고 업계의 대(對)정부 건의문을 토대로 종합정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메모리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유지하며 비(非)메모리 반도체 분야도 강화해야 하고, 미국과 중국의 기술 전쟁으로 인한 국제정치적 리스크까지 직면한 상황이다.
이에 업계는 정부에 연구개발(R&D)·제조시설에 대한 세액공제, 규제 완화, 인력 양성 지원 등을 비롯해 실효성 있는 지원 이행을 위한 ‘반도체산업육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요청했다.
美·中·EU, 자국 반도체 산업에 전투적 지원
이미 주요국들은 수십조원에서 수백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지원 계획을 쏟아내며 자국 산업 육성에 나서왔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최근 총 2조3000억 달러 규모 인프라 투자안 중 500억 달러(약 56조원)를 자국 반도체 산업 지원에 투입한다고 밝혔다. 또한 자국 내 반도체공급망 강화를 위해 반도체 설비투자액의 40% 세금 면제 등 인센티브 정책을 마련했다.
중국의 경우 반도체 자급률 향상에 사활을 걸며 지난 2015년부터 향후 10년간 1조 위안(약 170조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 중이다. 2025년까지는 2조 위안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반도체 시장의 70%를 국내 제조 업체들이 공급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을 계기로 자립화 노선을 걷고 있는데, 최대 500억 유로(67조원 이상)를 투자해 반도체 제조기술 발전 프로젝트 지원에 나섰다.
해외에서는 산업 육성에 탄력을 줄 수 있는 관련 법안도 검토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원은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관련 법안을 발의할 의지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韓 기업들, 기업 규제법에 통상 리스크까지 발목
반면 한국은 여전히 세금, 규제, 통상 리스크 등에 발목 잡혀 ‘반도체 전쟁’에서 속도감 있는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에 업계는 주요국보다 세액공제 범위가 협소하다는 점을 들어 연구개발 및 제조설비 투자비용에 대해 50%까지 세액공제를 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강력한 기업 규제법이 산적해 산업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며 관련 법안의 재검토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제 정세 변화에 대응할 정부 차원의 통상 전략 수립도 강조한다. 국내 기업들은 양국 간 대립으로 자칫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오는 12일 열리는 반도체 긴급대책회의에 삼성전자 등을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만약 투자 요청을 넘어 ‘반도체 동맹’에 대한 압박까지 가한다면 상당히 곤혹스러워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최근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우리 정부에 반도체 등 신기술 분야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자고 요청했는데, 반도체 최대 시장인 중국이 직접 손을 내밀었다는 점에서 우리 쪽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일단 건의사항마다 관계부처 간 협의를 통해 지원 여부를 확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각 요청사항에 대해 관계부처 간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업계의 건의사항을 최대한 수용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전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맹점 없는 지원을 펼쳐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정부는 전체 반도체 산업 생태계 강화를 위해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준비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최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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