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이 캄캄했다
치마 끝을 잡고 있던 아이를 시장 한가운데서 잃었다
은행 문 나서며 지갑을 열자 어둠만 튕겨 나온다
등 구부려 땅바닥 휘둘러도 카드가 없다
허둥대는 걸음
다급하게 달려도 제자리걸음
지갑 깊은 곳에서 곤히 잠자던 카드
몸에 날개가 달렸을까
유흥의 네온불빛 아래, 여린 스타킹 뜯기며
술 취한 배의 먹이가 되면 어떡하나
상점을 기웃대는 허욕에 난처해하지는 않을까
밤이 가까워 오는 시간
어디선가 울고 있을 딸아이 초조해지는 촉각의 떨림
생각을 더듬으며 되돌아가도 그림자도 없다
먼 이국의 화려한 사치를 꿈꾸었나
사라져 갈 숫자들이 어지럽게 머리 위를 돈다
양버즘나무 가지 끝 방향 표시 없이
구르는 낙엽을 밟고 가는 아이
너른 길 아장거리며 멀어져 가는 엄마 찾는 울음
녹음된 입출기의 음성이 현재를 일깨워준다
카드기에 꽂혀 환하게 웃고 있다
화들짝 들어선 지구대 긴 의자 위
양버즘나무 같은 눈물자국의 얼굴을 안았다
꼭대기부터 색이 바래가는 나무처럼
건망증이 나를 휘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