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보훈지청 보상과 최현일 주무관
인천보훈지청 보상과 최현일 주무관

지하철 1호선 인천역 하차 후 차이나타운을 지나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야트막한 응봉산 자락 ‘자유공원’에 다다르게 된다. 구한말 제물포에 정착한 서양인들에 의해 1888년 조성된 자유공원은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광복 후 ‘만국공원’으로 불리다가,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의 공훈을 기리고자, 1957년 10월 3일 장군의 동상을 공원에 세우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공산군이 38선 전역에 걸쳐 대대적인 남침을 하면서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북한의 기습 남침에 한국군은 개전 초반 속절없이 밀렸고,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적군에 손에 함락되고 말았다. 당시 미 극동사령부 최고사령관으로 도쿄에 주둔하고 있던 맥아더 장군은 전쟁 발발 나흘 뒤인 6월 29일 전선 시찰을 위해 한강방어선으로 향했다. 거기서 장군은 참호를 홀로 지키던 한국소년병을 마주쳤고, 그의 안전을 염려하여 후방 전출을 권고했으나 소년병은 퇴각 명령이 없는 한, 목숨 걸고 진지를 사수하겠다며 장군의 제안을 사양한다. 소년병의 애국심에 감명받은 장군은 그에게 필요한 것을 묻자, 소년병은 적과 싸울 무기와 탄약을 요청했다고 한다.
전쟁 초기 미국은 한국군 지원에 매우 회의적이었다. 서울이 사흘 만에 북한군 수중에 넘어갔고, 어쩌면 이 전쟁이 열흘 안에 북한군의 승리로 끝날 수도 있다는 미 정보당국의 비관적인 전망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은 한국소년병과의 만남을 계기로 ‘이런 용감한 군인이 남아 있는 나라를 절대 망하게 둬서는 안된다. 미국은 전력을 다해 대한민국과 이 땅에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면서, 미국 정부와 극동사령부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군을 적극 지원했다.
맥아더 장군이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반전 카드로 구상한 것이 바로 인천상륙작전이었다. 이는 연합군이 인천에 기습 상륙해 남쪽 깊숙이 진격해 있던 북한군의 허리를 끊어 적의 병참 보급선을 차단하고, 적들을 고립무원의 상태로 만들려는 전략이었다. 미국 정부는 이 작전의 성공확률이 500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며 극구 만류하였으나,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확신하고, 과감하게 단행하였다. 1950년 9월 15일 210여 척의 연합군 함정과 7만의 병력이 인천 월미도로 전격 상륙하였고, 2주 뒤인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면서, 인천상륙작전은 불리했던 한국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뒤집는 역사적 전사(戰史)로 남아 있다.
제76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있던 지난달, 외신은 아프카니스탄의 수도 ‘카불’이 20년만에 다시 탈레반에 의해 함락되고, 도시는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국외로 탈출하려는 시민들로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20년간 미군의 지원 아래 아프간 정부는 30만 군대와 100조원이 넘는 최신식 무기를 갖추었다고 전해졌지만, 미군이 철수한 지 100일 만에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6만 탈레반 병력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아프카니스탄의 군대와 지도자들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울 용기도 의지도 없이 일패도지(一敗塗地)하였고, 그들로부터 버려진 국민들의 절규와 절망만이 그 나라에 남겨진 것이다.
이번 카불의 비극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6·25전쟁과 인천상륙작전에서 조국을 위해 빛나던 청춘을 바친 호국영령들과 연합군 장병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이자, 2007년 유엔이 제정한 ‘세계 민주주의의 날’을 맞이하여, 이 땅의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쓰러져간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고, 다시금 자유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새기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맥아더 장군이 1954년 자신의 퇴임사에서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했듯이, 70여 년의 세월이 흘러 그는 이제 사라지고 없지만, 미 육군 원수 정모와 제복 차림에 쌍안경을 든 자유공원의 노병(老兵)은 오늘도 여전히 석양이 지는 월미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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