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별세한 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 고(故) 조용기 목사는 ‘희망의 신학’을 외치며 한국 개신교 부흥을 주도했다.
조 목사는 1958년 5월18일 고(故) 최자실 목사와 함께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천막 교회를 시작했다.
그의 노력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 1993년 교인수 70만명을 넘어서며 세계 최대의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 이르렀다.
1970년대부터 외국 주요 언론들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성장 비결을 소개했으며, 그 중심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조 목사의 리더십이 있었다. 이 때문에 ‘조용기’라는 이름은 20세기 동안 전 세계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사망선고를 받고 병상에서 누나의 친구로부터 처음 복음을 접한 뒤 부산에서 미국 오순절교단인 ‘하나님의성회’ 소속 켄 타이스 선교사를 만났고 폐결핵이 치유되는 경험을 하면서 신학교 입학을 결심했다.
1956년 9월 20세 때 하나님의성회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해 후에 장모이자 목회 동역자가 되는 최자실 목사와 만났다. 두 사람은 1958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5월18일 천막 교회를 개척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시작이었다.
그 후 성장을 거듭하면서 조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위상은 국내를 넘어 세계에 알려졌고, 1973년 9월 제10차 세계 오순절 대회를 한국에서 주최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아시아 국가가 주최한 첫 오순절 세계 대회였다.
여의도로 교회를 옮긴 뒤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져서 1979년 10만명, 1981년 20만명을 넘어섰다. 1976년에는 세계교회성장기구를 설립해 세계 교회 성장의 발판을 만들었다.
조 목사는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하나님의성회 총재를 역임하면서 제3세계 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에서 대규모 성회를 인도하고 강력한 성령운동이 전개됐다.
구소련 붕괴 후인 1992년 6월에는 모스크바에서 성회를 가졌고, 1997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가진 성회에서는 150만명이 운집, 두 나라에서 모두 개신교 사상 최대 집회라는 기록을 세웠다.
조 목사는 1975년부터 2019년까지 71개국에서 최소 370차례 부흥회를 인도했다. 비행 여정으로 보면 지구를 120바퀴 이동한 셈이다.
국내에서 민족복음화운동에도 헌신하며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을 다니며 성회를 인도했다. 1988년에는 일간지 국민일보를 설립, 기독교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에 전하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비정부기구인 사단법인 선한사람들(현 굿피플)을 세워 국내 및 해외에서 인권 환경 보건 및 아동복지 등의 증진에 앞장섰으며 그 공로로 1982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4년에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적십자헌혈유공자 금장’, 1996년에는 심장병어린이 무료시술 지원 및 소년소녀가장 돕기 헌신으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2005년에는 미국 뉴욕기독교교회협의회로부터 ‘더 패밀리 오브 맨 메달리온’을 수상, 2007년에는 미연방의회에서 ‘자랑스런 한국인 인증서’를 받았으며 2009년에는 캄보디아 정부가 주는 훈장을 받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뒤 김대중 대통령의 건의를 받아들여 평양에 심장병원을 짓는 사업을 추진했으나 2010년 천안함 사태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며 중단됐다.
저술가로서도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4차원의 영적세계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하지만 빛나는 업적 뒤에는 일부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세습, 권력다툼, 비리 등으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조 목사는 2008년 5월 당회장직에서 물러나 원로목사로 활동했다. 상당수 대형교회 설립자들이 담임직을 자식에게 세습하는 것과 달리 당회장을 이영훈 목사에게 물려줘 세간의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조 목사가 사실상 막후에서 교회의 주요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가족들이 관련 단체를 통해 교회를 사유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수백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되기도 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7년 조 목사와 장남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에 대한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한편 조 목사는 이날 오전 7시13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고인은 지난해 7월 교회 집무실에서 출입문에 머리를 부딪친 사고를 당했고, 같은 달 뇌출혈 증세를 보여 수술을 받았다. 지난 2월 부인 고(故) 김성혜 전 한세대 총장이 세상을 떠나 유족으로는 장남 희준, 차남 민제 국민일보 회장, 삼남 승제 한세대 이사 등 세 아들이 남았다.
조 목사의 빈소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 1층 베다니홀에 마련됐다. 조문은 15일부터 17일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진행된다.
장례예식은 18일 오전 8시 한국교회장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열린다. 장례위원장은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장종현, 이철, 소강석 목사가 맡았다. 하관예배는 같은 날 오전 10시 경기 파주시 오산리최자실국제금식기도원 묘원에서 열린다.
최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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