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고 스타란 큰 바퀴를 달고 나온 예스럽지만 묵직한 트랙터 같은 공연이었다. 지난 5일 밤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펼쳐진 ‘비틀스 링고 스타 앤드 히스 올 스타 밴드’ 내한공연은 비틀스 음악만 들어온 양민(良民)이라면 낯설 만한 무대였다. 
 

사실 가장 유명한 링고 스타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지난 1980년대 전성기를 보낸 록밴드 ‘토토’, 1970년대 활약한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유토피아’, 1980년대 팝 밴드 ‘미스터 미스터’, 1960년대 중반부터 활동한 라틴 록 밴드 ‘산타나’에서 활약한 멤버들도 그와 비슷한 비중으로 나섰다. 
 

정찬이 아닌 뷔페였던 셈이다. 팝계에서는 링고 스타 못지않은 이름을 갖고 있는 토토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루카서를 비롯해 유토피아의 기타리스트 토드 룬드그렌, 미스터 미스터의 베이시스트 리처드 페이지, 산타나의 키보디스트 그레그 롤리 등이 그 명단이다. 
 

이들은 노래도 불렀지만 역시 특기는 보컬보다 악기 연주였다. 합주에서 괴력을 발휘했다. 루카서를 비롯한 노장들은 젊은 시절 못지않은 속주로 잠들어 있던 록의 엔진을 일깨웠다. 링고 스타의 드럼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가장 큰 환호가 나온 건 그래도 비틀스 넘버들이었다. 링고 스타가 이 곡들에서 보컬로 나섰다. ‘왓 고즈 온’, ‘옐로 서브마린’, ‘아이 워너 비 유어 맨’ 등 비틀스 히트 넘버들이 울려 퍼지자 관객들은 합창으로 화답했다.
 

지난해 비틀스 멤버 중 첫 내한했던 폴 매카트니의 보컬이 난(蘭)을 치듯이 유연했다면 읊조리는 링고 스타의 보컬은 판소리의 아니리 같았다. 컨트리 장르인 벅 오언스의 ‘액트 내추얼리’가 잘 어울린 이유다. 
 

무엇보다 그는 이번 밴드를 이끄는 리더였다. 사륜구동의 비틀스의 분명한 네 바퀴 중 하나였지만 매카트니를 비롯해 존 레넌, 조지 해리슨이라는 나머지 세 바퀴는 너무 굵고 튼튼했다. 

링고 스타는 보컬로 나서며 분위기를 이끌어나갈 때 드러머로서 연주할 때를 분명히 구분하며, 2시간을 능숙하게 이끌어갔다. 
 

잠실 실내체육관 옆 잠실 주경기장에서 지난해 열린 매카트니 공연에는 4만5000명이 운집했다. 비틀스 첫 내한의 프리미엄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 프리미엄이 걷히고 한국의 이슈가 정치로 쏠린 시점에서 치러진 이날 공연의 관객은 2000명 가량에 불과했다. 
 

하지만 54년 만에 내한한 링고 스타의 진가를 확인한 관객들은 분명 특혜를 받았다. 최근 국내 개봉한 비틀스 다큐멘터리 영화 ‘비틀스 : 에잇 데이즈 어 위크 - 투어링 이어즈’에서 10대 시절의 링고 스타는 내내 웃었다. 유연하고 유머를 담당한 그 때문에 비틀스의 해체가 미뤄진 건 유명한 일화다. 
 

이날 역시 관객이 피켓에 들고 있던 자신의 ‘섹시 코’에 활짝 웃는 등 친근함으로 팬들에게 다가갔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천진난만한 웃음은 여전했다. 
 

팬들이 노란 별 속에 ‘예스, 히어 유어 프렌즈’라고 적힌 검은색 피켓을 활짝 든 마지막곡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럼 마이 프렌즈’를 부를 때는 자신의 전매특허인 양손 브이를 활짝 펼쳤다. 그의 곁에는 새로운 동료들이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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