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공주(김지영·김리회·박슬기)와 그녀를 둘러싼 연분홍빛 옷을 입은 군무들의 우아한 일사분란함은 생명력으로 꿈틀되는 보라빛 꽃을 연상케 했다. 꽃봉오리와 만개한 형상으로 시시각각 변화는 모습은 마치 몸짓으로 난(蘭)을 치는 듯했다. 

국립발레단(예술감독 강수진)이 지난 3~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 신작 마르시아 하이데 버전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화려함으로 눈을 현혹하게 했다. 

2막에서 라일락 요정(한나래·정은영·박슬기)이 일행과 떨어져 홀로 남은 데지레 왕자에게 잠들어 있는 오로라 공주의 아름다운 형상을 보여주는 장면은 마치 꽃 한다발을 가득 안고 보는 듯한 향취를 전했다. 푸른 달빛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백색 튀튀를 입은 처녀귀신 윌리들의 군무가 인상적인 ‘지젤’의 백미에 비견할 만한큼 몽환적이었다. 

오로라 공주가 앙증 맞은 동작으로 잠에서 깨어나듯 무대 위에 연신 봄바람을 일으켰다면 그녀를 보호하는 라일락 요정의 기품이 배인 몸짓은 가을녘 저녁에 울려퍼지는 바이올린 같았다. 

또 다른 방점은 오로라 공주를 쉴 새 없이 괴롭히는 ‘카라보스’(이재우·이영철·김기완)다. 마녀지만 남성 무용수가 연기한 이 캐릭터는 전반적으로 낭만적인 작품 분위기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작품이 순진무구하게 흘러가게끔 만들지 않는다. 

수석 무용수들의 빼어난 기량과 함께 국립발레단 전체적인 성장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은 3막 오로라 공주와 데지레 왕자의 결혼식이다. ‘오네긴’ 등 드라마 발레에 일가견이 있는 강수진 단장 부임 이후 단원들의 연기력이 부쩍 늘어난 걸 증명한 무대였다. 차이콥스키 클래식 발레의 웅장한 선율에 드라마틱한 리듬을 부여했다. 기분전환, 여흥 등이라는 뜻인 디베르티스망을 선보일 때가 그렇다. 

공중을 주저 없이 가로지는 플로린 공주와 파랑새의 파드되, 알리바바와 4 쥬얼스의 요염한 몸짓, 뮤지컬 ‘캣츠’ 속 고양이들 못지 않은 유연함과 연기력을 선보인 장화신은 고양이와 레이디 캣, 유머러스한 빨간모자와 늑대 등 익숙한 동화 속 캐릭터가 클래식발레 기술력을 갖춘 채 연기력까지 더해진 단원들의 연기로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부활했다.

여기서 다시 카라보스. 결혼식은 성대하고 화려하게 끝난다. 소리 없이 주인공들을 스쳐 지나가는 암흑의 그를 보고 있노라면 현실에서마저 어딘가 악이 꿈틀대고 있을 듯하다.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세상의 이면을 아무렇지 않게 톺아보는 것이 웰메이드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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