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별빛 내린 나무가 되어 / 이전 처럼 움직일 수가 없어 / 나는 다시 돌이킬 수 없으니 / 그대 너무 외면하지 않기를”(‘나무가 되어’)
 

지난 8일 저녁 대치동 마리아칼라스홀에서 조동진(69)이 20년 만에 내놓은 정규 6집 ‘나무가 되어’를 느꼈다. ‘들었다’는 단순한 청각적인 수사로는 부족했다. 노랫말과 멜로디, 특히 사운드의 공간감을 체험하게 했다. 
 

조동진은 ‘음유시인’으로 통하는 포크 음악의 대부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노래는 시의 오래된 미래”라는 혹자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푸른 빛 속을 지나 어둠의 바다를 지나 / 우리 처음 만나기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섬안의 섬’)은 제주라는 섬에 또 섬처럼 존재하는 그의 집을 떠올리게 한다. 
 

“바람 불어 대는 비탈길에 해는 떠올라도 우리 푸르던 날 하늘빛에 더 서글퍼 보였었네”(1979)는 서슬 퍼런 유신 시대의 엄혹함 속 젊음의 찬란한 슬픔에 먹먹해진다. 
 

“그날은 별들이 쏟아질 듯 / 머리 위에 닿은 하늘 / 깊고 푸른 내 슬픔은 / 물빛 고요한 강물”(‘그날은 별들이’)은 자연에 투영된 감정의 일렁임이 일품이다. 
 

문학평론가 함돈균 씨는 “좋은 시를 쓰는 순간 그 사람이 시인이다. 그런 관점에서 음악 가사를 시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그런 형태의 상이 있다면 수상자로 마음 속에는 조동진을 품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자연을 다루는 조동진의 노랫말에 대해 “노래 부르는 사람과 자연이 일치를 이루는 서정시와 같은 세계”라며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시는 스스로 도취돼 나르시시즘이 많은데 조동진의 가사는 아름다운 순간, 행복한 기억에 대한 회고가 아닌 그것이 끝나는 지점에서 출현하는 감정의 가사”라고 읽었다. “가벼운 위로를 하지 않는 음악”이라는 것이다. 
 

함 평론가의 이런 해석은 사운드에도 묻어난다. 이번 앨범의 특징은 몽환적이라는 것인데 전자악기 등을 통해 분위기와 공간감을 강조한 일렉트로닉의 하위 장르인 앰비언트를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포크의 서정성은 뭉근하게 머금고 있다. 
 

지난 1996년 5집 이후 잠시 은둔했던 20세기 조동진의 포크가 ‘21세기적인 귀환’을 한 것이다. 가사(假死) 상태에 빠져 있던 포크에 새 숨결 또는 새 공간감을 부여한 셈이다. 1980년대 동아기획, 90년 하나음악, 그리고 2010년대 푸른곰팡이로 이어지는 그의 음악 공동체의 계보는 새로운 변화와 함께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이번 앨범에는 또 2년 전 사별한 아내의 흔적도 아른거린다. “그댄 어쩌면 천사였을지도 / 기다란 방을 지나 / 빈 가슴으로 다가와 (…) 그 눈부신 그대의 어둠 어둠”(‘천사’). 애틋함과 그리움의 정서가 앨범을 지배하는 이유다. 
 

조동진은 이날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뿐 앨범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보태지 않았다. 음반이 그의 지난 20년의 모든 걸 노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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