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특정한 내러티브를 기대하고 왔다면 당황할 법하다. 

프랑스 안무가 겸 연출가 필립 드쿠플레(56)가 ‘드쿠플레스 컴퍼니 포 더 아츠(DCA)’와 함께 무대에 올린 ‘콘택트’(11~13일 LG아트센터)는 극의 맥락이 어디까지 자유분방하게 뻗어나가는지를 보여줬다. 

‘파우스트’라는 가상의 뮤지컬을 리허설하는 동안 벌어지는 다양한 해프닝을 그린다. 소동극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다. ‘드쿠플러리(Decoufleries)’, 즉 ‘드쿠플레 방식의’란 신조어를 탄생시킨 드쿠플레답게 공연 자체는 특정한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성격을 띤다. 

다양한 동작의 무용을 비롯해 연극, 마임, 화려한 영상 등 멀티 쇼의 화려한 미학을 보여준다. 캬바레 공연의 단골 손님인 ‘단면을 잘라낸 박스와 와이어’는 고혹적인 향수를 자극한다. 

뮤지션 노스펠과 피에로 르 브르주아가 맡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도 발군이다. 전자악기 등을 통해 분위기와 공간감을 강조한 일렉트로닉의 하위 장르인 앰비언트를 비롯해 모던 록, 클
래식음악 등을 아우르며, 극의 다양성에 날개를 달아준다. 

이 모든 것은 한정된 무대 공간을 초월하는 효과를 낳는다. 다양한 장르의 결합이 단지 볼거리 나열을 위한 방편이 아니라 특성상 한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무대 예술의 일종의 탈출구가 된다는 걸 증명한다. 

한국의 조악한 융복합 공연이 가장 비판을 받는 부분 중 하나는 서사가 빈약하다는 부분인데 ‘콘택트’는 장르 융합에서 중요한 건 감각이라고 반문하는 듯하다. 

화려한 감각이 뒤섞인 관능의 ‘콘택트’는 자유로운 조화로 자연스레 메시지도 던진다.

‘파우스트’는 전지적인 지식의 성취를 통해 신과 대등한 위치에 서려는 인간의 욕망을 바탕에 깔고 있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콘택트’는 욕망에 사로잡히는 대신 마음껏 즐기라는 정언명령을 부담없이 건넨다. 따듯한 정서에 빠져 있다보면 파우스트의 고뇌는 저만치 달아난다. 

드쿠플레의 ‘콘택트’는 총천연색인 것들의 접촉(contact)으로 그 고뇌와 소외의 연대를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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