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경찰서 동암지구대 순찰4팀장 경위 최현태 / 매년 11월19일은 유엔에서 정한 ‘세계화장실의 날’ 이다. 전 세계 인구 중 약 25억명의 사람들이 위생적인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고 그 중 약 10억명의 사람들은 완전히 노출된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한다고 한다. 

화장실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위생적인 부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생존과 연결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길에서 처리되는 용변은 수천만 기생충과 바이러스를 우리들의 식탁으로 옮기며 면역 체계가 약한 어린이와 노약자들에게 각종 질병을 걸리게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위생적인 화장실이 없다는 것은 바로 ‘범죄’ 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개발도상국의 여성들은 오픈된 장소에서 용변을 보며, 성희롱을 당하거나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지난 5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은 강남역 인근 상가 2층 남녀 구분이 없는 공용화장실에서 발생했다. 피의자는 여성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기만을 기다렸다가 아무 이유 없이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기준 전국 지자체 등 공공기관에서 설치한 5만여 개의 공중화장실에서 발생한 범죄 건수는 총 1795건에 이르렀다. 이 중에서도 살인, 강도, 강제추행 등 강력범죄는 25.7%(462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 같은 수치는 일반 상가 등 민간 차원에서 설치·운영 중인 공중화장실을 제외한 것이다 보니 실제 범죄 발생건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중화장실이 무조건 위생적이지 않다거나 위험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에도 수백명이 이용하는 공중화장실은 대부분이 남녀공용 화장실이며, 타일은 깨져있고 악취가 나는데다 바닥은 미끄러워 장애인이나 어린이가 이용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상가 안 자체 화장실은 강력범죄 이후에도 열악한 변기 시설, 고장난 문고리 등 안전문제가 염려되는 화장실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

특히 남녀 공용화장실의 경우 몸의 일정 부분을 모두 드러내는 개인적인 장소인 만큼 성범죄에 노출되기 쉽고 음주가 많은 밤 시간대에는 성범죄 및 폭력ㆍ살해 욕구 등이 제어되지 못하고 폭발할 수 있다는 위험성도 상존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금도 공중화장실에서는 살인 등 강력범죄를 비롯한 성추행, 몰래카메라 등 혐오성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에 경찰은 강남역 사건 이후 해당 상가 화장실에 ‘여성 안심벨’을 설치했다. 여성안심벨은 화장실 내에서 실질적인 위협을 받는 이용자가 사용할 수 있는 장치로서 1분간 사이렌이 울리도록 설계돼 있다. 

실제로 지난 9월21일엔 서울의 모대학교 연구동의 한 여성 화장실에 잠입해 20대 여성 연구원을 성폭행하려고 했으나 해당 연구원이 비상 알림벨을 누르면서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경찰은 지속적으로 주요 범죄 취약지를 대상으로 지자체 등에 협조를 구해 비상벨 설치 예산을 배정받아 범죄 예방을 위한 환경개선 사업을 해가고 있다.

화장실의 경우 사생활 침해나 인권 침해 문제 등으로 인해 CCTV를 설치하기 힘들며 비용이나 공간적 제한이 있기 때문에 경보장치 설치 등을 통해 내부 범죄 상황을 외부에 쉽게 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인 셉테드(CPTED)기법에서 볼 때에도 밝고 시설정비가 잘된 깨끗한 화장실은 공적인 장소임을 표시해 경각심을 일깨우기 때문에 범죄예방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세계화장실의 날’은 명칭이 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모두가 인간 답고 안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깊은 뜻을 가진 날이다. 

사찰에서는 화장실을 근심을 푸는 곳이자 번뇌가 사라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해우소 라고 한다. 화장실을 이용할 때 만이라도 아무런 방해 없이 우리들의 근심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경찰, 지자체의 시설개선뿐만 아니라, 화장실을 직접 이용하는 시민 개개인의 인식과 이용매너, 안전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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