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 물가상승률 전망치로 1% 초반대를 내놓자 한국은행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난 10월 유가 상승에 힘입어 내년 상반기 물가가 2%에 근접할 것으로 내다본 이주열 총재의 전망과는 적지 않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KDI는 지난 6일 ‘대내외 여건 변화가 국내 소비자물가에 미친 영향’ 보고서를 통해 “내년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 초반(1.1~1.4%)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한은이 제시한 2016~2018년 중기물가안정목표(2.0%)은 물론 내년 물가 상승률 전망(1.9%)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은은 지난 10월 중순 열린 물가설명회에서 내년 물가상승률을 기존 전망치와 동일한 1.9%, 올해 상승률은 기존의 1.1%에서 0.1%포인트 낮춘 1.0%로 전망했다.

KDI와 한국은행의 전망치가 차이가 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국제유가와 경기 전망 등을 두고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단 한은은 저유가 영향이 약화되고 국내 경기가 완만한 상승세를 그리면서 소비자물가 오름세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기준금리 인하 등 그간의 완화적 거시경제 정책이 시차를 두고 효과를 나타내면서 내수가 완만한 개선 흐름을 보이고 세계경제 회복세가 이어지면서 수출부진도 점차 완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KDI는 국제유가 상승 전망에도 국내 경기 둔화와 미국의 정책 불확실성 등 하방위험으로 대내외 수요가 약화되면서 물가상승세를 제약할 것이란 분석이다.

천소라 KDI 거시경제연구부 연구위원은 “특히 최근의 물가상승률 하락은 국내 총수요의 부진과 함께 대외 여건 변화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내년에도 소비자물가는 낮은 상승세를 지속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1% 초반대의 전망치를 내놓은 것은 KDI 뿐만은 아니다. 

금융연구원도 앞서 내년 물가상승률이 1.3%를 나타낼 것으로 점쳤다. 국제유가의 상승세에도 소비 등 수요 기반의 물가 상승압력이 여전히 낮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실제로 우리 경제는 지난 10월 이후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 이후 더욱 상승세를 타고 있음에도 최순실 사태, 대통령 탄핵 가능성, 가계부채 급증세, 수출 부진,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 등 악재들이 줄줄이 불거지며, 각종 경제지표들이 고꾸라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경제상황에 대한 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지난 11월 95.8을 기록해 전달 대비 6.1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메르스 사태로 급격히 꺾였던 지난해 6월(98.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역대 최저 수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2월의 71.2다.

또 한은의 전망치에는 물가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전기요금 등의 규제가격 변수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도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지난 7∼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도낮았던 것은 전기료 누진제의 한시적 인하 때문이었다. 한은에 따르면 전기료 인하는 7~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약 0.2%포인트 끌어내렸다. 

그럼에도 한은은 물가목표치에 폭염과 같은 날씨변수와 정치적 이벤트 등을 여전히 제외시켜 신뢰성에 의문을 더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0월 물가설명회에서 “한국의 경우 규제가격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기 때문에 공공요금 정책도 (물가)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며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없는 (날씨 등)변수나 정치적 이벤트 등의 요인은 경제전망할 때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 내부적으로도 이같은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공개된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향후 물가경로에 국제유가와 원화환율 변동 등 높은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으며, 대내외 수요부진으로 수요측면의 물가상승압력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한은 관계자는 “현재 전기요금 개편과 불확실한 경제 상황 등 지난 10월 이후 발생한 여러 변수들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 등을 재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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