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경찰서 교통안전계 경장 박정미 / 동쪽에 사는 예의바른 군자의 나라. 예부터 우리나라를 일컫는 말이다. 예(禮)는 식사법, 옷매무새 등 의식주 전반에 걸쳐 우리 일상을 지배해왔다. 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걸음걸이 하나도 사람의 인상을 좌우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차만 타면 난폭해지는 걸까?

최근 부산에서는 경적소리에 화가나 망치로 상대방의 차량을 내려친 일명 망치남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갑작스런 끼어들기에 놀란 피해차량 운전자가 경적을 울리며, 항의하자 그 경적소리에 화가 난 피의자가 낚시용 둔기를 꺼내 휘두른 것이다. 

‘갑작스런 끼어들기’, ‘경적소리에 화가나’대체로 보복운전의 발단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런데 갑작스런 진로변경과 경적을 울리며, 항의하는 것은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적어도 한 번쯤은 해본 일이 아닌가.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해 온 나의 운전습관으로 인해 누구나 보복운전의 가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경적소리가 인체에 미치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차량 안에서 듣는 경적 소리는 23~35dB, 차량 밖에서 듣는 경적소리는 70~74dB로 보행자나 상대차량 운전자는 경적을 울린 차량의 운전자에 비해 경적소리를 3배가량 크게 듣게 된다. 이는 3분간 반복적으로 청취할 경우 10단계의 스트레스 지수 중 9단계인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 달하는 수치이다.  

곧 내가 경고의 표시로 비친 경적소리가 상대 운전자에게 불쾌감과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가해운전자를 두둔하거나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최소한보복운전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준비는 필요하지 않을까? 충돌의 위험이 있었지만 내가 감지해 피할 수 있었던 경우까지 경적을 울릴 필요는 없다. 위험을 알려 배려의 사인이 돼야 할 경적이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지만 그보다 난폭·보복운전의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있다. 바로 차가 주는 익명성과 밀폐성이다. 

마치 인터넷 익명성의 폐해처럼 도로 위에서 익명성의 자유를 만끽하며, 일부 운전자는 난폭운전을 서슴지 않는다.

또한, 자동차라는 아주 사적이고 밀폐된 공간이 주는 편안한 익숙함이 어떠한 방법으로든 침해당했을 경우 일부 운전자는 보복운전을 하기도 한다. 

직장 또는 가정에서 나만의 공간을 갖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자동차라는 공간에 더욱 몰입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로 위에서 차는 더 이상 개인의 사적인 공간이 아니다. 도로는 차가 다니는 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운전자들이 규칙을 정해 이동하는 공간이다. 차는 단지 수단일 뿐 도로를 이동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찰에서는 연말연시 교통질서확립을 위해 지난해 12월19일부터 음주·난폭·보복운전 등 차량을 이용한 폭력행위에 대한 특별단속에 들어갔다.

또한, 지난해 2월12일부터 난폭운전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도로교통법이 개정됐다. 난폭·보복운전 등 차량 폭력행위가 사회적 문제가 됐음을 반증하는 자료다. 

희망찬 정유년의 새해가 밝았다.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새벽을 여는 붉은 닭의 해를 맞아 희망의 기운이 도로 위에도 퍼지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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