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종 기자 / 일부 중소기업들이 공공기관 조달시장에서 중소기업 보호와 판로개척 지원을 위해 도입된 제도를 악용해 조합 단위로 입찰담합을 하거나 입찰 참가자격을 위조해 부당이득을 취한 사실이 감사원에 적발됐다.

감사원은 지난 4~5월 중소기업청과 조달청, 중소기업중앙회 등을 대상으로 '중소기업자간 경쟁제도' 운영실태를 점검한 결과 이같은 내용을 비롯해 총 31건의 감사결과를 시행했다고 13일 밝혔다.중소기업자간 경쟁제도는 중기청장이 지정한 200여개 품목을 공공기관이 구매할 때 중소기업만을 대상으로 입찰하고, 낙찰자는 물품을 직접 생산하는 제도다.

대기업 참여는 배제되고 중소기업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경영안정을 위한 중요한 판로확보 수단이 돼 왔다.
 
중소기업 조합과 수의계약하도록 한 '단체수의계약 제도'로 인해 입찰담합이나 소수기업에 대한 혜택 편중 등의 문제가 나타나자 10년 전인 2007년 1월 도입됐다.

그러나 감사 결과 단체수의계약에서 나타났던 담합 등의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 제도를 통해 조달청이 낙찰자를 선정한 지난해 92건의 레미콘·아스콘(아스팔트) 구매계약 중 88건에에서 수량담합이나 가격담합 등 부당공동행위로 의심되는 사항이 확인됐다.

일례로 부산지역 레미콘 입찰에서 A조합은 B조합보다 낮은 가격을 유지한 채 두 조합 모두 계속해서 예정가격(177만7100원)보다 높은 가격으로 입찰해 6차례 유찰됐다.
 
이어 7차 입찰에서는 A조합이 예정가보다 불과 125원 낮은 가격으로 입찰해 낙찰(낙찰률 99.992%)됐다.
이와 반대로 울산지역 입찰에서는 B조합이 A조합보다 계속 낮은 가격을 유지한 채 4차 입찰까지 예정가(308만6978원)보다 높은 가격으로 입찰해 유찰된 뒤 5차 입찰에서 B조합이 예정가보다 278원 낮은 가격으로 입찰해 낙찰(낙찰률 99.99%)됐다.

예정가를 사전에 알 수 없었던 두 조합들이 최대한 이익을 많이 남기기 위해 높은 가격에서부터 조금씩 가격을 낮춰 예정가에 근접시키는 수법으로 '나눠먹기'를 하려고 입찰가를 사전에 합의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또 대전지역 아스콘 입찰에서는 C조합 등 3개 조합이 입찰에 참여해 모두 낙찰자로 선정됐는데 3개 조합의 입찰수량 합계가 공고수량(426만t)과 일치해 입찰수량을 사전에 합의해 배분한 것으로 의심된다.일부 아스콘 조합이 공공구매 입찰 참가자격을 위조한 사례도 적발됐다.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아스콘 조합이 입찰 참가자격을 따려면 해당 권역 내에서 시장점유율이 50% 이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이 충남권과 경남권에 있는 아스콘 조합 6곳을 표본 점검한 결과 6개 조합 모두 시장점유율이 50% 이하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조합원사의 매출액을 누락하거나 조합원사 수를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권의 C조합은 전체 64개 조합원사의 매출액이 해당 권역 시장점유율의 97.3%에 달해 입찰 참가자격이 없는데도 조합원사의 절반인 32개사의 매출액만 서류에 작성해 자격을 취득했다.

일부 조합원사가 탈퇴한 것처럼 처리하거나 총회의사록을 조작해 조합원사의 수를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입찰 참가자격을 취득한 조합도 있었다.

감사원은 조합들의 입찰 담합으로 인한 폐해가 지속되고 있는 현재의 경쟁입찰 방식을 '다수공급자계약'으로 변경할 경우 연간 2643억원의 예산이 절감될 것으로 추산했다.
 
다수공급자계약은 조달청이 제품별로 다수업체와 각각 단가계약을 한 뒤 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에 등록하면 수요기관이 업체와 제품을 선택해 구매하는 제도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조달청과 중기청에 레미콘과 아스콘 경쟁입찰을 다수공급자계약으로 전환하는 등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을 통보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는 이번 감사를 통해 적발된 담합 의심 사례를 전달했다.
이번 감사에서는 중소기업자간 경쟁제도에서 중소기업이 계약물품을 직접 생산해 납품토록 한 조항을 위반해 완제품을 수입하거나 하청 생산해 납품한 116건(54억여원)의 사례도 적발됐다.

주요 사례를 살펴보면 D사는 중국 등 해외에서 15억여원의 활성탄을 수입해 그대로 납품했는데도 직접생산한 것처럼 속였다.

E사 등 2개 업체는 유량계(流量計)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독일에서 제품을 수입해 상표도 바꾸지 않은 채 납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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