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과 생활하는 천막 안에 때론 뱀이, 때론 휘발유통이…”
“두 딸과 생활하는 천막 안에 때론 뱀이, 때론 휘발유통이…”
  • 승인 2011.04.2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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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개발광풍속 철거민들의 현주소> 일산 덕이지구 철거민 김명자 씨

하루 종일 우르릉 쿵쾅 집 부수는 소리가 심장을 울려댄다. 괴물의 울부짖음, 죽을 지경이다. 최후 통첩장이 날아왔다. ‘철거.’ 두 음절의 글자가 가슴에 박힌다. 자칫 이대로 있다간 포클레인 삽날에 산채로 매몰되는 소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가야 하는데…갈 곳이 없다. 가야 하는데…. 용산참사 2년이 지났다. 포클레인 굉음은 그치지 않는다. 개발광풍 속 철거민들의 오늘이다. 지난 호 신계동 철거민에 이어 이번호엔 일산 덕이지구 가구단지 철거민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도시개발법 따르면 사기가 아니다?”

일산의 가장 서쪽, 덕이지구는 가구단지로 유명하다. 이곳은 2007년부터 재개발에 들어갔다. 그동안 가구 장사를 해오던 세입자들은 시공사와 용역의 압박에 못 이겨 대부분 쫓겨났다. 김명자 씨 홀로 남았다.
김 씨는 2002년 가구단지에 들어와 장사를 시작했다. 많이 벌진 못했지만, 월세를 내고 장사를 하는 데엔 큰 문제가 없었다. 2006년 1월, 옆 매장에서 불이 난 게 화근이었다. 1시간 만에 불은 김 씨의 매장으로 옮겨 붙었다. 집주인은 내부수리를 요구했다. 김 씨는 내부수리와 관련된 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않고 자신의 돈을 매장에 쏟아 부었다. 돈은 다시 벌면 되는 일이었다. 가구단지는 영원할 줄 알았다.  
내부수리를 하고 3개월이 지나 지나자 재개발 소식이 들렸다. 김 씨는 불안했다. 집주인은 말이 없었다.
“집주인은 재개발이 될 줄 알고 있었다. 매장을 수리해놓고 온전하게 보존돼 있어야 보상금을 더 받으니까, 알면서도 제 돈으로 수리를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제 입장에선 수리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재개발 되면 사라질 매장이었으니까. 저를 이용한 것이었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따졌다. 수리비라도 물어내라고. 그런데 도시개발법에 따르면 그게 사기가 아니란다. 내부수리 시켜놓고 3개월 만에 매장을 팔아먹었다. 이주비라도 주겠지 했는데, 덤핑으로 넘기고 나가버렸다.”
2007년 5월의 일이다. 공사는 시작됐다. 이주비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매장의 가구들은 명도이전이 진행되면서 모조리 빼앗겼다.



“집주인에게 당한 사람이 저뿐만이 아니다. 다른 상인들도 이 사람한테 불만이 많았다. 25만평(덕이지구 도시개발구역 하이파크시티) 중에서 유독 이 한 사람만 이주비를 못주겠다고 버텼다. 원래 이 땅은 오래전 정부가 나환자들에게 공짜로 준 땅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집주인에게 돌아갔다. 50억 정도 책정돼 있는 것으로 안다.”
김 씨는 2009년 4월부터 매장 인근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주변을 정리해온 용역들은 천막까지 망가뜨렸다. 김 씨는 컨테이너 속으로 숨어들기에 이르렀다. 컨테이너는 용역들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오랜 기간 용역들의 감시 속에서 살았다. 다른 지역 철거민들과의 연대는 컨테이너 밖으로 나오게 된 계기가 됐다. 용역들과는 ‘정면승부’를 벌였다. 다시 천막을 짓고 수차례 여름과 겨울을 났다. 사법부도 김 씨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김 씨는 불법 거주, 불법 집회 등의 혐의로 지난해 11월 29일 수감돼 올해 2월 출소했다.  

“제초제 먹고 죽으려고도”

“용역들의 횡포를 직접 체험하지 않고선 그 수위를 가늠할 수 없다. 2008년 4월, 철거 용역이 우리가 살고 있는 상가에서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하며 강제 명도를 자행했다. 이 과정에서 큰 딸이 철거용역들에게 상가 안으로 개 끌리듯이 끌려들어가 폭행을 당했다. 27바늘을 꿰맸다. 저는 목뼈가 뒤틀렸다. 남은 두 딸과 저에게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하고 폭행을 저질렀다. 이후에도 폭력은 계속됐다. 자식들 앞에서 저에게 가래침을 뱉었다. 시행사의 만행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저를 비롯해 딸 셋이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못잔다. 수시로 술 먹고 와서 천막을 건드린다.” 



김 씨는 그동안 딸 셋과 천막생활을 이어왔다. 용역들은 허구한 날 들이닥쳤다. 김 씨 본인을 비롯 딸 셋이 집단린치를 당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에 과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멀쩡한 아이들을 옹벽으로 몰아 구타를 했다. 60여명이 천막을 둘러싼 채 때려 부수고 감금하기도 했다. 어떤 날엔 뱀이 천막 안에 놓여있기도 했다. 누군가 휘발유 통을 옆에다 두고 간 날도 있다. 제가 담배를 피우는 줄 알고 불이 붙기를 기다린 것으로 보인다. 인근에 사는 주민들에겐 ‘저 여자를 내쫓아야 여기 제대로 된 길이 난다’는 식으로 매도했다. 당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저도 옛날에는 지나가다가 피켓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 보면, 저런 사람들 때문에 나라 시끄럽다고 말하고 다녔다. 지금 그 벌을 받는 것 같다.”
큰 딸은 용산참사 당시 김 씨와 함께 투쟁에 나섰다가 다치기도 했다. 용역에게 맞아 지병이 생겼다. 김 씨가 머리채를 잡힌 채 구타를 당할 때 어머니를 도우려다 벌어진 일이다. 둘째 딸은 화상을 입어서 피부가 벗겨졌다. 
“딸은 직장에도 못나간다. 부모가 이러고 있는데 직장이나 제대로 다닐 수 있겠나. 한국사회에서 보통의 직장들은 이런 사태에 휘말리는 직원들을 싫어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자기 부모가 머리채 잡혀서 나둥대는데 어떤 자식이 그걸 보고 있겠나.”



김 씨는 자녀들과 함께 죽으려고도 했다. 한 때 영정사진을 들고 고양시 거리를 걷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아이들이랑 제초제 먹고 죽으려고 했다. 자식들이 그래도 잘 버티고 있고, 또 잘 살려고 한다. 둘째는 다행히 그림을 잘 그려서 장학금 받고 대학 다닌다. 고양시에서 주최하는 미술대회에서 동메달을 받기도 했다. 막내는 고양시 악단에 부단장으로 있다. 여기 천막에서 먹고 자면서 큰 불만 없이 지낸다.”
하지만 남편과는 이혼하기에 이르렀다. 김 씨는 재개발은 가정파괴까지 야기한다고 격앙했다.
“남편은 제가 사업을 잘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네가 말아먹었으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배기라지만 도를 넘어선 싸움이 계속됐다. 결국 이혼했다. 남은 건 빚 밖에 없지만 자식들이 함께 있어 큰 위안이 된다.”  

“대책 없어 답답할 뿐”

김 씨는 “용역업체와 시행사, 시청과 경찰서, 이 모두가 한 통속”이라고 항의했다. 항의만으로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점도 안다. 김 씨는 그간 법률 책을 계속 읽어온 터다. 전철연 등 시민사회 진영의 자문을 구해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김 씨는 또 도시개발법에 따른 피해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배워왔고, 도시개발법에 분명히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할 수 있는 조항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 인허가 내준 시청은 나 몰라라 한다. 숭례문에 불을 지른 할아버지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는 “언제까지 딸 셋 데리고 누가 이 춥고 더러운 곳에서 버틸 수 있겠느냐”며 “정치인들이 용산사태와 같은 참사가 일어났을 때만 철거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평소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모순을 해결해주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한편으로 김 씨는 “사실 아무리 떠들어도, 어떤 정치인도 듣지 않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진보 정당들에서도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안다. 대책도 없는 것으로 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 가족들에게도 딱히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김 씨는 “답답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투쟁은 끝까지 하겠다는 각오다. 천막 주변에선 담배 연기만 피어났다. 김 씨네 천막 너머론 완공된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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