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남편이 겪었을 고통 생각하면 눈물도 안나…끝까지 싸울 것”
“그간 남편이 겪었을 고통 생각하면 눈물도 안나…끝까지 싸울 것”
  • 승인 2013.12.1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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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범 씨 죽음’ 삼성본관 앞 노숙농성 현장



서울을 비롯 전국적으로 폭설이 쏟아진 지난 12일. 거리의 사람들은 이리저리 눈을 피해 지하철 출구로, 건물 안으로 대피해야만 했다. 우산을 쓴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름철 폭우가 내리듯 눈발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는 이런 폭설 속에서도 천막 하나 없이 맨땅에 가부좌를 틀고 농성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었다. 지난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 노동자 최종범(32) 씨의 부인 이미희 씨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노조 등으로 구성된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대책위) 소속 노동자들이었다.
최 씨는 삼성전자 협력업체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31일 자신의 차안에서 연탄을 피우고 생을 마감했다. 삼성은 아직까지 최 씨의 죽음과 관련해 일언반구도 없는 상황. 유가족과 대책위는 2개월 가까이 장례도 치르지 않고 삼성의 책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최 씨의 죽음은 ‘삼성에 의한 타살’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열흘 넘게 차가운 땅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농성장에선 극한의 대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과 삼성이 고용한 용역이 농성장을 사납게 주시하고 있지만 유족과 대책위는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다. <위클리서울>은 혹한의 추위 속 농성장을 찾았다. 

     




천막도 못치게 하다니…
  

최 씨의 유족과 삼성전자서비스노조 등 대책위는 삼성본관 앞에서 지난 3일 농성을 시작했다. 혹한의 날씨에도 천막은 허용되지 않았다. 경찰은 집회장소 천막설치는 도로교통법 등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유독 삼성본관 앞에선 이처럼 천막농성이 허용되지 않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천막은 도로교통법 38조에 의거해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일반 시민들의 통행권을 침해하기에 허용이 안 된다”고 밝혔다.

유족과 대책위는 천막 대신 돗자리와 비닐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삼성이 고용한 용역에 의해 수차례 빼앗길 뻔 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변호사가 이건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해도 삼성은 이를 무시하고 농성장을 밀어내려 한다”며 “대책위와 유족은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밤을 샌다”고 했다.

비가 내리면 비닐을 뒤집어쓰고 농성장을 지켰다. 눈이 내린 날도 마찬가지였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비닐을 덮어 쓴 채 가부좌를 틀었다. 경찰은 우산을 쓴 채 이들을 주시했고, 유족과 대책위는 침묵으로 응수했다.

돗자리 앞에 놓인 고인의 사진은 쏟아지는 눈에 그 모습이 흐릿해졌고, 유족들은 고인의 사진 위를 덮은 눈을 시시때때로 치웠다. 가부좌를 튼 유족과 대책위 관계자들의 머리 위 비닐에도 하염없이 눈이 쌓였다.

빌딩숲이다 보니 체감 온도도 상대적으로 낮다. 하루 종일 앉은 채 버텨내는 일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농성을 이어갔다. 고인의 부인 이미희 씨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싸늘했다. 이 씨는 “우리는 단단히 각오를 하고 농성을 하고 있다”며 “삼성이 사과하고 대책을 내놓을 때까지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고 했다.

이 씨는 “남편의 죽음 이후 세상이 어떤지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며 “그동안 집회 같은 건 우리 가족과는 다른 저 세상 사람들 얘기인줄로만 알았다. 남편이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노동자들을 어떻게 폭압하는지 알게 되면서 TV나 신문에서 보던 노동자들의 절규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종범 씨는 지난 7월 자신이 속한 협력업체 사장에게 전화로 폭언을 들었다. 4분여에 이르는 통화 시간 동안 여러 차례 ‘임마’, ‘새끼야’ 등의 욕을 들어야 했다. 고객의 불만사항인 ‘voc(고객의 소리)’가 접수됐다는 이유에서였다. 최 씨는 여러 차례 상황을 설명하려 했으나 사장은 불만을 접수한 고객에 대해 ‘칼로 찔러서 죽여 버리던지’, ‘신나 뿌려서 같이 죽여 버리면 되지’, ‘확실히 개 잡듯이 잡아’ 등 혐오스러운 표현을 쓰면서 극단적인 대응을 거듭 강요했다. 드러난 것이 이 뿐이지 그동안 최 씨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게 유족과 대책위의 얘기다. 이렇듯 인권 유린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삼성 마크만 단 위장도급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최 씨는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협력사는 최 씨와 같은 직원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상황이다.

부인 이 씨는 “남편은 어느 누구보다 착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늘 저와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고 ‘회사를 열심히 다녀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겠노라’는 말을 밥 먹듯이 했다”며 “그런데 이렇게 억울하고 절망스러운 일이 있어 죽게 되었다. 그간 남편의 고통을 생각하니 눈물도 안 난다. 오히려 악이 바친다. 이렇게 삼성과 싸우고 경찰, 용역과 대치하는 게 전혀 무섭지 않다”고 했다. 

그런 이 씨지만 그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있다. 한 번도 자신의 품을 떠나지 않았던 어린 딸을 떼어둔 채 농성장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사랑하는 딸이 이제 돌을 맞았다. 그런데 아이를 떼어놓고 여기서 농성을 계속 하는 게 조금은 부담이 된다. 13일이 아이 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씨는 “하지만 지금은 아이 돌보다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한을 달래는 게 더 중요하다”며 “남편의 동료 분들이 이 혹한의 추위에 나와서 농성을 함께 하는데 돌잔치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했다. 이 씨는 “남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삼성이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끝까지 여기 계신 모든 분들과 투쟁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전한 침묵 삼성 “협력사와 교섭”

혹한의 날씨에 천막도 없이 밤을 새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동안엔 비닐과 돗자리, 침낭 등에 의지해 잠을 청했다. 숙면을 취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책위 한 관계자는 “용역이 들이닥쳐 농성장을 밀어낼까봐 이처럼 유족과 대책위가 한 겨울 맨땅에서 잠을 청한다”며 “이렇게 추운 날 잠이 올 턱도 없고, 게다가 대로에서 울리는 차 소리 때문에 쉽게 눈을 붙일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뒤척이다가 오전 8시에 기상한다. 곧바로 삼성본관 주변에서 고인의 죽음을 알리는 출근길 선전전에 돌입한다. 오전 선전전과 집회가 끝나면 피케팅도 이어진다. 대책위 소속 관계자 일부는 피케팅 농성차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서울을 한 바퀴 돈다. 삼성 본관 앞에선 가부좌 농성이 이어진다. 저녁이 되면 대책위 주최로 촛불집회가 열린다. 유족과 대책위의 하루는 이렇게 길다. 그나마 촛불집회에 일반 시민들이 속속 가세하고 있다는 점이 위안이다. 

삼성은 유족과 대책위의 농성에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현장에서 이미희 씨를 보살피고 있는 금속노조 충남지부 김정희 교육부장은 “최종범 열사가 차디찬 냉동고에 갇힌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며 “그런데 삼성은 아직 사과 한마디 없다. 이게 과연 1등 기업의 대처법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서비스는 1등을 강요하지만 여기에 협력사가 공조하면 AS기사들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인격유린을 당한다”며 “최 열사는 삼성 마크만 달고 위장도급으로 노예처럼 일했다. 근로기준법에 의거한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 반드시 민주노조를 세우고, 추악한 삼성이 제대로 기업 경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최 열사의 한을 푸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위영일 삼성전자노조 위원장은 “삼성은 당장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고인 앞에 사죄해야 한다”며 “고인은 유서에서 자신의 죽음이 동료들에게 ‘부디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하나의 전태일”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삼성의 노조파괴 문건도 도마에 올랐다. 위 위원장은 “노조파괴 문건을 보면, 노조를 사전에 막고 고사시키려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상황에서 누군들 견딜 수 있겠는가. 누구나 제 2의 최종범 열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금속노조와 삼성 측은 사태해결을 위한 교섭 요청을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 고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는 지난달 삼성전자서비스에 노사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삼성이 교섭에 나서지 않을 경우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들은 “고인이 불법파견과 악질적인 임금제도 때문에 동료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지 한달 보름이 지났지만 삼성은 사과도 없고 교섭도 거부하고 있다”며 “50여 개 단체로 구성됐던 대책위가 170여개 단체로 확대됐다. 향후 전국의 삼성전자서비스 센터와 삼성 관련 사업장에 대한 전방위적 항의 행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1일에는 삼성본관 앞에서 대규모 인원이 참가하는 삼성규탄 금속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린다.

노조와 대책위는 ▲최종범 열사에 대한 공개사과 및 책임자 처벌 ▲표적감사와 노동조합에 대한 차별 대우 등 노조 탄압 중단 및 재발방지 ▲건당 수수료제도 폐지와 월급제 도입, 생활임금 보장 방법 ▲최종범 열사의 명예회복과 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서비스는 “노조가 당사에 교섭을 요청하고 있으나 교섭에 참여할 당사자는 고인과 근로관계에 있던 협력사 삼성TPS(주)가 되는 것이 맞다”며 “당사는 해당 협력사가 노조와의 교섭에 성실하게 임하고, 교섭사항들을 잘 해결할 수 있도록 최대한 권유하겠다”고 밝혔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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