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올해 노벨문학상을 덮치다
‘미투’, 올해 노벨문학상을 덮치다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8.05.21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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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게 됐다. 지난 4일 ‘스웨덴 한림원(Svenska Akademia. 이하 한림원)’의 공식발표로 이제는 세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된 일이다.

간단히 사건의 개요를 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은 한림원이다. 한림원에는 모두 18명의 종신위원이 있다. 이들이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한다. 그런데 그 종신위원 중 한 명의 남편이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의 가해자가 됐다. 결국 종신위원 중 모두 8명이 그만뒀다. 남은 10명으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할 수 없다.

 

▲ 지난 4일 노벨문학상 선정을 연기한다는 한림원의 발표가 보도된 스웨덴 최대 일간지 다겐스 뉘헤테르.

 

그럼 좀 더 자세히 이 일이 벌어진 과정을 들여다보자.

한림원의 스캔들이 처음 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해 11월이다. 스웨덴 최대 일간지인 다겐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가 특종을 쳤다. 카타리나 프로스텐손(Katarina Frostenson)이라는 종신위원의 남편인 프랑스계 사진작가 장 클로드 아르노(Jean-Claude Arnault)가 1996년부터 2017년까지 한림원이 소유한 스톡홀름과 프랑스 파리의 아파트에서 여성 18명을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한림원은 발칵 뒤집어졌다. 칼 16세 구스타브 왕에게도 보고가 됐다. 한림원 종신위원을 위촉하는 권한이 국왕에게 있기 때문이다. 국왕은 한림원에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그러다가 지난 4월 초 한림원 측이 아르노가 아내 프로스텐손을 통해 지난 해 수상자인 밥 딜런을 포함해 최소 6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사전 유출했다는 혐의까지 드러났다. 사태는 더 심각해졌다.

한림원 종신위원들은 프로스텐손의 사퇴를 요구했지만 관철되지 않자 종신위원 중 시엘 에스마르크(Kjell Espmark), 페테르 엥룬드(Peter Englund), 클라스 외스테르그렌(Klas Östergren)가 먼저 사퇴했다. 이어 한림원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인 사라 다니우스(Sara Danius)가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사건의 당사지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도 사퇴하면서 서서히 올해 노벨문학상 선정에 대한 위기감이 돌았다.

엎친데 덮쳤다. 4월 27일 보수성향 일간지인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Svenska Dagbladet)는 장 클로드 아르노가 스웨덴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공주의 엉덩이를 더듬었다는 제보를 받고 이를 보도했다. 제보자도 한림원 종신위원의 부인이었다. 그야말로 기름에 불을 붙인 것이다.

수 년 안에 여왕이 될 사람, 그것도 현 국왕보다 더 인기가 높은 공주다. 뉴스를 접한 스웨덴 시민들은 ‘아르노는 완전히 돈 놈’이라고 성토했다. 가뜩이나 지난 해 밥 딜런의 수상 논란으로 노벨문학상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한림원을 해체하라는 요구까지 있었다. 한림원에게 사무실을 임대해 준 건물 주인도 계약 해지 통보를 계획할 정도였다. 결국 5월 4일 한림원은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1786년 구스타브 3세에 의해 설립된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을 선정, 발표하는 스웨덴 최고 권위의 학술 단체다. 스웨덴 한림원이 세 들어있는 스톡홀름 구시가인 감라스탄(Gamla stan)의 옛 증권거래소 건물은 스웨덴을 찾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고, 그 건물 1층에는 노벨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230여년 만에 그 명성과 자존심이 땅바닥에 곤두박질 쳐진 것이다.

 

▲ 한림원이 있는 노벨 박물관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노벨문학상을 선정하지 않는다는 발표에 대해 일본 무라카미 하루키 팬들이 흥분했다. 그리고 한림원의 결정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마치 지난 해 밥 딜런에게 뺏긴 노벨문학상을 올해는 하루키가 반드시 받기라도 하는 양.

그런데 하루키만큼이나 올해 노벨문학상을 기대했던 또 다른 한 명은 어땠을까? 바로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 말이다. 스웨덴의 한 저명한 문학평론가가 도발적인 분석을 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이 취소됨으로써 고은 시인이 조금은 안심하게 됐다는.

그는 고은 시인은 몇 년 째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 중 하나였다고 언급하면서 고은 시인이 한국 내 미투 논란에 휩싸인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의 논리는 이것이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때 고은 시인은 반드시 후보에 오를 것이지만, 선정 심사 과정에서 한국의 미투 논란이 거론될 것이다.

그 무렵 고은 시인은 지금까지 침묵(영국의 한 매체에는 자신은 결백하다고 딱 한 번 언급했지만)과는 달리 그는 적어도 한림원이 듣도록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라는 것. 하지만 스웨덴의 미투가 그가 그러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꽤 설득력이 있는 지적이다. 제 아무리 고은 시인이라고 해도, 뚜렷한 해명 없이도 다른 미투의 가해자나 논란 대상자들처럼 논란이 이어지지 않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한림원의 심사 과정에는 고은 시인의 미투 논란은 분명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만에 하나라도 그런 상황 속에서 덜컥 노벨문학상이라도 수상한다면, 앞선 하루키 팬들은 물론 세계 문학계에서도 고은 시인의 수상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을 테니.

한림원의 내부 스캔들로 노벨문학상이 수여되지 못하는 상황을 고은 시인과 연결 지어서 생각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고은 시인이 한국 내 미투 운동의 직접 당사자인 상황에서 아예 후보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교과서에서 작품이 빠지고, 각종 문학 업적에 대한 재평가들이 이뤄지는 마당이니 한림원이 고은 시인을 유력한 후보로 계속 고려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스웨덴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스웨덴의 미투’가 ‘한국의 미투’ 논란의 고은 시인을 또 다른 논란에서 구했다는 일부의 그런 지적과 분석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혹시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노벨문학상의 아쉬움을 대신하면 될 테니까. 트럼프와 함께 받는다면 다소 속상하겠지만.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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