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을 걸어 ‘선학동’으로
‘눈길’을 걸어 ‘선학동’으로
  • 남인희·남신희 기자
  • 승인 2018.05.2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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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 장흥 갯길 따라-이청준의 문학적 자취
▲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김영남 위선환 이대흠 등등 문향(文香) 장흥이 낳고 기른 수많은 작가들을 이청준 생가 마당의 문학그림지도에서 만난다.

 

앞집에 핀 벚꽃이 이쪽 마당까지 환히 밝히건만, ‘노인’도 그 아들도 없는 집은 다만 적요하다.

전설 같은 ‘눈길’을 걸어 모두 어디로 떠나가셨는고.

회진면 진목리, 작가 이청준(1939∼2008)의 집.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노인은 그렇게 나에게 저녁밥 한끼를 지어 먹이고 마지막 밤을 지내게 해주고 싶어 주인의 양해를 얻어 그렇게 혼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했다.>

 

▲ 이청준 생가 뒷마당에 핀 동백

 

형이 진 빚 탓에 집을 팔아놓고도, 그 집에서 더운 밥 지어 마지막으로 자식에게 한 그릇 먹여야 집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던 어머니의 절박한 소원은 이루어졌다.

다시 아들을 대처로 내보내야 하던 그 새벽, 눈은 온 세상을 뒤덮어 버렸고 어머니는 첨엔 문밖까지만, 다음엔 동구 밖까지만, 그 다음엔 재 너머까지만, 그리고 그 다음엔 아예 장흥의 차부까지 그 먼 눈길을 자식과 함께 걷는다.

그가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엔 새벽 1시에 설밥을 지어먹고 집을 나서도 광주까지 8시간은 족히 걸렸더란다. 먼길 가는 아들을 배웅하고 어머니는 혼자서 다시 그 ‘눈길’ 되짚어 온다. ‘오목오목 디뎌 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당신 한몸 기탁할 집도 없어진 고향마을로. 아들 발자국에 당신 발자국을 포개며 어머니가 걸었던 그 ‘눈길’은 우리 문학사에 난 수많은 길들 중 가장 아름답고 아프다.

 

▲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천년학> 세트장

 

작품 안으로 수없이 흘러든 고향 중엔 1954년 4월3일 진목마을 바닷가 개펄의 한 장면도 있다.

광주의 중학교에 입학해 친척집으로 더부살이 가기 전날 어머니와 아들은 개펄을 헤매며 게를 잡고 있었다. 빈손에 아이를 맡기러 보낼 수 없던 어머니의 ‘미안막이 선물’이 게였던 것. 하지만 자루 속의 게는 이튿날 온종일 300리 버스길에 시달려 친척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상해 버린 뒤였다. 헤어짐을 앞두고 어머니와 아들이 막막하고 애틋하고 하염없는 심사 속에 잡았던 게는 결국 도시의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만다.

작가는 “그때 그 궁색스런 게자루와 거기 함께 담겨 버려진 어머니의 정한은 그러나 두고두고 내 삶과 문학의 숨은 씨앗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 김선두 화가가 그린 이청준

 

삶이 남기고 간 내밀한 흉터들 속에서 역설적이게 삶의 꿈과 소망을 일궈냈던 작가는 생전에 “요즘 사람들 가운데엔 작은 상처나 흉터 하나 지니지 않으려 함은 물론 남의 아픈 상처 또한 거기 숨은 뜻이나 값을 한 대목도 읽어주지 못하는 이들이 흔하다”고 아쉬워 했다.

6·25전쟁 중 반동으로 몰린 외갓집 식구들의 떼죽음이라든지 밤중에 느닷없이 눈부신 전짓불빛이 방 안 가득 쏟아져 들어오며 그 전짓불 뒤에서 ‘어느 편’인지를 묻던 소리들에 대한 기억도 소설이 된 흉터들이다. <쓰여지지 않은 자서전>이나 <소문의 벽> 등은 묻는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진술’을 해야했던 공포스런 전짓불 체험에서 나왔다.

 

▲ 이청준 생가에서 만나는 그의 문학작품들

 

고향땅 곳곳에서 그의 문학이 남긴 자취를 만난다. 남포에 가면 영화 <축제>의 무대가 있고, 관음봉 산자락 펼쳐진 선학동마을(산저마을)엔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천년학> 세트장이 있다. 그의 문학과 삶에서 고향과 근원을 발견한 영화감독 임권택은 그의 소설

<남도소리> 연작을 바탕으로 해서 <서편제>와 <축제>와 <천년학>을 찍었다.

한 장님 여인이 부른 소리로 말미암아 학이 날고 지령음(地靈音)이 두리둥두리둥 울렸다는 마을 선학동. 장님 여인의 속에 들어 있는 소리는 이청준 문학의 원형이다.

평생 그가 작품 속에 일군 것은 어쩌면 고향이 품은 그 모든 것이었으리라. 고향과 어머니에 진 빚. 그가 남긴 모든 작품들은 그 빚에 대한 ‘아름다운 갚음’이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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