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딜레마의 연속
인생은 딜레마의 연속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1.09.28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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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우리의 일상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밥을 먹을까 말까처럼 가벼운 선택도 있지만 가방을 살까 원피스를 살까와 같은 제법 신중한 선택의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어느 것을 선택을 하든지 나의 기대에 부응하는 만족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을 선택해도 나에게 유리할 수 없는 선택도 있다. 선택지가 딱 두 개 뿐일 경우, 그리고 그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유리할 수 없는 상황 앞에 맞닥뜨리게 되면 딜레마에 빠졌다고들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 딜레마. 살면서 마주치지 않으면 제일 좋겠지만 어디 인생살이가 내 맘대로 뜻대로 되던가 말이다. 운전을 하다가 교차로에 막 진입하려는 찰나 황색 신호등으로 바뀌어 버리면 멈추어야 하는 게 맞지만 달려온 가속도가 있는지라 멈추면 뒤차가 위험할 것 같고 달리자니 신호 위반이 될 것 같아 주춤하는 경우가 있다.

수능 시험에 선택하지 않은 과목의 수업시간을 들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현재 고3들이 가장 많이 빠져 있는 딜레마의 구역이다. 그 어떤 상황을 선택하더라도 불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들은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 위에서의 고민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이 무조건 받아 들여야 하는 딜레마도 있다.

스물아홉 살 때였다. 어른들은 아홉수를 조심하라는 말을 한다. 열 개라는 꽉 찬 완성을 하나 앞둔 상황에서 모쪼록 몸조심 마음조심 하라는 뜻이겠거니 했다. 아니, 어쩌면 귓등으로 들었을 수 도 있다. 아홉수가 뭐 대수라고... 흘러가는 세월 중 어느 해일 텐데 말이다. 하지만 스물아홉 살은 돌이켜 보건데 많이 힘들었다.

스물아홉이 되던 새해 첫 날부터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시작했다. 해가 뜨지 않았으면 싶었고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 주길 바랐다. 좀 웃기지만 난 서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살아 보지 않은 서른에 대한 막연함 같은 거, 다시는 오지 않을 나의 이십대 마지막, 서른이 되면 내 젊음은 끝나버릴 것 같은 두려움, 서른이 되면 내 나이의 첫 번째 숫자가 바뀌어 버리는 절망 등등. 이런 저런 이유로 어떻게든 들이닥칠 서른의 딜레마에 빠졌다. 멈추고 싶지만 멈출 수는 없고 맞이하고 싶지 않지만 맞이해야 하는 서른의 딜레마.

그러나 내 친구들은 다들 무덤덤했다. 결혼을 한 친구들은 더더욱 그랬다. 아이 키우는데 집중해야 하고 알뜰살뜰 살림도 해야 하고 맞벌이 하는 친구는 살림하랴, 직장 다니랴 늘 시간에 쫓겨 세월이 가는지 오는지 모를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서른 따위의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오히려 쉰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시집이나 가라고 했다.

미혼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른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이직을 해야 하는지, 사귀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해야 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았다. 아무도 서른이 두려운 나를 이해해주지 않았다. 오는 서른 막지 말고 가는 스물아홉 잡지 말란다.

그래 이것들아, 잘 먹고 잘 살아라. 서른이 아니라 천년만년 남편이랑 자식들이랑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아라.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서른의 딜레마는 일 년 내내 나를 조바심 나게 했다. 아직 이십대에 머무르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이십대를 보내기 전 해야 할 일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이렇게 무의미하게 서른을 맞이하다니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사실은 별로 할 것도 없었으면서). 그래서 스물아홉 마지막 날 여행을 떠났다. 어차피 맞이해야 할 서른이라면 좀 더 근사하게 맞이하고 싶었다. 밀고 들어오는 서른이 아니라 당당하게 맞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른이 되는 첫 태양을 멋있게 맞이하고자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나 홀로 여행을 감행했다.

여행은 늘 설렌다. 다른 도시로 향하는 출발은 적당한 긴장감과 흥분을 동반하지만 때로는 약간의 불안함도 있다.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의 출발 그것은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물아홉의 나는 살아보지 않았던 삼십대가 기대와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밀려오는 서른의 압박을 어떻게든 받아들이고자 떠난 나 홀로의 여행 역시 그랬다. 그렇지만 당당하고 싶었다.

그. 러. 나.

수평선 저 너머 붉게 물드는 서른의 첫 태양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마음속으로 기도도 하고 다짐도 하며 또 이런 당당한 나의 모습에 내심 뿌듯하기도 한 그런 상황은 개뿔 상상 속에서나 불과했다.

허무하게도 바닷가 인근 숙소 침대위에서 그것도 해가 중천이나 떠서 맞이한 서른 살.

혼자 여행 왔다고 신나서 캔 맥주를 열심히 들이키다가 놓쳐버린 서른의 첫 태양.

그렇게 서른 살의 딜레마는 무심하게도 나를 덮쳐 버렸다.

지나고 보니 서른 그거 별거 아니더라. 나에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세상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되어 있더라. 일 년 내내 안절부절 못하던 스물아홉의 내가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었다. 이 후로도 두 번이나 더 아홉수를 보냈지만 스물아홉만큼이나 별스럽지는 않았다. 그 때의 내 친구들처럼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살아내는 일에 매진하다보니 자연스레 스치듯 지나간 아홉수들이었다.

지금 우리 집에는 십 대의 마지막을 보내는 아이가 있다.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라 아홉수가 뭔지 이십대가 오는지 가는지 관심은 없다. 다만, 수능이라는 썩 유쾌하지 않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놀고 싶고 잠자고 싶은 유혹과 대치하며 수험공부에 열중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을 뿐이다.

나이 앞자리가 바뀐다는 사실에 괜한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일관 되었던 내 스물아홉의 그 때와는 결도 다르고 비교할 수도 없는 딜레마적 상황이다. 하지만 살아보고 나니 별거 아닌 게 인생이라 너무 아득바득 애쓰지 말고 적당히 하라고 얘기해 주고 싶지만 살아본 자의 자만일까 싶어 그저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내 스물아홉 시절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천지가 개벽할 만큼의 변화된 양상들을 드러내 놓고 있지 않은가.

살면서 인생의 목표점을 설정해 놓고 그 곳을 향해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만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좌절할 수도 있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목표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스물아홉 마지막 날 술에 찌들어 서른의 첫 태양을 놓쳐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힘을 기르는 것이다. 삶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의 질적인 과정에 따라 좀 더 행복해질 수도 불행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서른의 첫 태양은 놓쳤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온 덕택에 어제보다 오늘의 태양이 더 반짝인다.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더 찬란하리라는 믿음도 있다.

수능일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단 하루의 수능시험으로 인생이 좌지우지 되는 딜레마적 입시제도이긴 하지만 어차피 겪어 내고 당면해야 할 과정이니 기꺼이 받아들이자.

수능의 결과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 좌절하지도 말자.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무엇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질적인 방법을 구축해 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수험생들 모두 파이팅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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