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훈의 뮤즈’. 가수 로시(24·강주희) 앞에 꼭 붙는 말이다. 신승훈이라는 기라성 같은 이름으로 로시를 단번에 소개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무게를 짊어질 수밖에 없는 이름이기도 하다. 로시는 길어지는 공백기에 정체성이 흔들릴 때면 그 이름 뒤에 숨고 싶었다고 했다. 로시 하나로 대중 앞에 설 수 없게 돼버릴까 봐 고민의 늪에 빠진 것이다. 허우적거리는 시기를 지나 로시는 드디어 정답을 찾았다.
아직 대중에게 ‘로시’ 그 자체를 다 보여주지 않았기에 그냥 주저앉아버리기엔 이르다. ‘발라드의 황태자’ 신승훈의 제자답게 발라더로 앞에 나섰지만, 로시는 걸그룹 멤버가 꿈이었다. 연습생 시절 춤을 배우고 퍼포먼스를 하는 게 당연했다. 데뷔 7년 차 가수가 된 이 시점, 로시는 발라드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할 줄 아는 가수라는 걸 더 어필하고 싶다.
새 디지털 싱글 ‘섬씽 캐주얼(Something Casual)’이 그런 매개체다. 동명의 타이틀곡은 70~80년대 유행한 디스코 팝 장르다. 레트로 사운드에 로시의 허스키한 보컬이 더해져 통통 튄다. 갇혀 있는 일상을 벗어나 나만의 자유를 꿈꾸자는 내용은 20대 로시의 이야기와 딱 알맞다.
“솔직히 말하면 음악에 대한 아쉬움 있었어요. (신승훈) 대표님에게 ‘너무 발라드만 하는 게 아니냐’고 이야기했거든요. 대표님은 저를 뽑은 이유가 다양한 걸 할 수 있어서였거든요. 더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때를 기다리시는 것 같아요. 신중하고 생각이 많은 편이세요. 댄스곡은 대표님에게도 도전이에요”
로시가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건 2019년 발표한 ‘비(BEE)’ 이후 4년 만이다. 발라더의 일탈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로시에게는 옷장 속에서 알맞은 옷을 골라 입는 과정이다. “발라더 이미지에 갇혀있기 싫었어요. 사실 전 발라드에 관심이 별로 없었거든요. 걸그룹 마마무나 싱어송라이터 제시 제이처럼 신나고 쿨한 노래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대중은 저를 발라더라고만 생각하는 점이 너무 아쉬웠어요. ‘아닌데. 나 다른 거 더 잘할 수 있는데. 나 이런 것도 할 수 있고, 춤도 출 줄 안다’고 보여주고 싶었어요”
음악 방송도 4년 만에 선다. 앨범을 낼 때마다 텀이 길었고, 자연스럽게 팬들과 만나는 기회도 적어졌다. 가수로서 팬들 앞에서 무대를 하는 것에 목말랐다. 함께 굶주린 팬들을 만나기 위해 콘서트나 팬미팅 기회를 만들기로 신승훈과 약속했다. 묵혀뒀던 댄스 실력도 다시 살리고, 발라드에 맞춰져 있는 보컬 스타일도 울면서 바꿨다. 댄스 챌린지 대열에도 더 늦기 전에 합류하려고 한다. 동창인 그룹 이달의 소녀 출신 김립, 츄와 그룹 모모랜드 출신 주이와도 챌린지를 약속했다. 신승훈과의 챌린지는 마지막 비장의 카드다.
“대표님께 ‘어릴 때 여러 가지 많이 해보고 싶어요. 썩혀둬서 뭐 합니까’라고 했어요. 트렌디하고 제 나이 또래 하는 분들이 하는 걸 하고 싶다고 했죠. 지금 준비하는 곡들도 있어요. 내년 초부터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로시에게 신승훈은 아빠 같은 존재다. 함께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아빠와 딸 사이’가 더 이상 비유가 아니게 됐다. “아빠랑 말다툼하는 것처럼 하다가도 서로 ‘그래도 사랑해’라고 해요. 예전에는 대표님이니까 말도 조심하고 제 의견을 잘 이야기 못했는데, 이제는 혼나더라도 말을 해보려고 해요. 대표님도 제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조율해 줘서 제가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오고 있어요. 만족하고 있어요”
로시는 앨범의 콘셉트부터 메이크업, 의상까지 세세하게 신경 쓰고 있다. ‘신승훈의 보석함’이라고 불리는 음악의 빗장을 열기 위해 직접 나서는 것이다. 1년 전에 나온 ‘썸싱 캐주얼’을 더 이상 묵혀두고 싶지 않아, 구체적인 콘셉트를 정리해 직접 PPT를 만들기도 했다. 다섯 번의 두드림 끝에 보석함에서 나올 수 있었다.
“예전에는 저도 스스로 뭐가 어울리는지 모르겠고 대표님이 원하시는 대로 했어요. 점점 저도 적응되다 보니 제가 어떤 게 어울리다는 걸 느끼게 됐죠. 이번에는 비주얼적으로 주근깨를 찍어야 한다고 하니까. 대표님은 ‘뭐야’ 이러셨어요. 틱톡이라는 건 이런 거고, 릴스라는 게 있다는 것도 알려드렸고요. 확실히 세대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제가 알려드리면 물어봐주시고 정말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신승훈과 접점을 찾고 제 색깔을 찾으면, 대중의 선택을 받는 것이 숙제다. 싱어송라이터로의 역할을 꿈꾸기에 고민이 많은 지점이다. “아이유 선배님의 계보를 봐요. ‘좋은 날’ ‘너와 나’처럼 듣기 쉬운 노래를 하다가 작사·작곡에 참여하게 됐잖아요. 대표님도 제가 그런 대중적인 음악을 한 뒤에 제 음악을 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롤모델로 꼽는 아이유와는 접점이 많다. 10대 시절 여자 솔로 가수로 첫출발을 했고, 음악 스펙트럼이 넓다. 독특한 음색이 비슷하다는 평을 종종 듣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따라 부르다 보니 습득된 건가 싶어요. 제가 드라마 OST를 내면 노래만 듣고 아이유 선배님인지 알고 찾아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아차 싶긴 했어요. 자신 있는 건 한 번 들었을 때는 아이유 목소리 같을 수 있지만, 계속 들으면 로시만의 목소리가 있거든요. 허스키 대명사 중에서도 스타일이 나눠지는 것 같아요”
데뷔 후 7년은 가수로서 반환점인 시기다. 현 위치를 돌아보고 부담감과 불안감이 공존했다. 굳이 보지도 듣지도 않아도 되는 말까지 신경 쓰게 되고, 본인의 한계를 의심하게 됐다. 돌고 돌아 내린 해답을 내린 지금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찼다. “대표님에게 ‘전 여기까지 일까요?’라고 한 적이 있어요. ‘세상이 아직 널 모르는 거다’라고 위로해 주시더라고요. 앞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많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제가 좀 더 열정을 갖고 이 노래에 맞게 밝아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음악을 길게 할 거니까 ‘신승훈 뮤즈’가 아닌 ‘로시’로 나가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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