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54) 감독에게 물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순신에 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이순신이 나오는 꿈은 안 꿨느냐고. 김 감독은 “한 번도 꾼 적이 없다”고 했다. “전 그게 더 긍정적인 것 같아요. 장군님이 거슬린 부분이 없어서 별 말 없으신 것 같아요”
자그마치 10년이다. 2014년 ‘명량’이 나오고 지난해 ‘한산:용의 출현’을 거쳐 올해 ‘노량:죽음의 바다’까지. 개봉 시기로만 따져서 10년이지 사실 준비 기간과 개봉 후 해당 작품 관련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시간까지 다 계산해보면 십수년이 훌쩍 넘는다. 김 감독은 2007년에 데뷔했다. 사실상 이순신이라는 한 인물에 영화 인생 대부분을 바친 셈이다. 이제 이순신이라고 하면 학을 뗄 만도 하지만 김 감독은 여전히 이순신을 바라본다. “전혀, 전혀 안 지겨워요. 전 <난중일기>를 수시로 봐요. 특히 마음이 착잡하고 무겁고 멜랑콜리 할 때 들여다 봅니다. 이상하게 용기가 돼요”
이순신 3부작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찾을 수 없는 희귀한 기획이다. ‘007’이나 ‘미션 임파서블’ 같은 프랜차이즈 영화 또는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 같은 시리즈 영화는 언제라도 있었으나 실존했던 한 인물을 영화 3편으로 나눠 탐구해 들어갔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국내에서만큼은 다시 나오기 힘든 프로젝트이고, 이런 독특한 작업을 흥행으로 연결시켰다는 점 역시 반복되기란 어려울 것이다. ‘명량’이 1761만명, ‘한산:용의 출현’이 726만명. ‘노량:죽음의 바다’가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한다면, 3부작이 누적 관객수 3000만명을 넘기는 전무후무한 기록이 만들어진다.
십여년의 세월 동안 한 사람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그것을 이른바 액션블록버스터로 구현해낸다는 게 범인(凡人)은 엄두를 못 낼 일이지만, 김 감독은 그 같은 작업을 10년 넘게 이어오고 그 끝을 냈는데도 덤덤하기만했다. “글쎄요, 이순신 3부작을 하기 위해서 각별한 의지나 엄청난 정신력이 필요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준비를 열심히 한 거죠. 장군님께 부끄럽지 않게 잘 만들어서 관객에게 보여드리겠다, 그런 생각 정도를 했습니다” 대신 김 감독은 이 3부작을 완성한 건 “천행(天幸)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명량’ 때 개봉을 못 할 뻔했어요. 당시에 세월호 참사가 있었기 때문에 바다가 주무대인 이 영화를 공개하는 게 맞냐는 말이 있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운 좋게 개봉한 거죠. ‘한산’과 ‘노량’을 찍을 때는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었어요. 그때는 촬영 자체가 연기될 뻔했죠. 하지만 밀어 붙였습니다. 아마 그때 촬영을 중단했다면 ‘한산’과 ‘노량’은 안 나왔을지도 몰라요. 전 참 운이 좋았습니다”
김 감독이라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없었던 건 아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100분에 달하는 해상 전투 장면이었다. 그는 그 긴 시간을 전투 장면으로 지루하지 않게 채워 넣어야 한다는 압박에 각본 단계부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촬영 전 액션 시퀀스들을 사전 시각화 하는 작업을 하면서도 ‘이건 좀 힘들다’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100분의 해전(海戰)을 왜 보여줘야 하는가, 그게 노량 해전에 임하는 이순신의 마음과 정신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수단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니까 서서히 완성이 돼갔다고 했다.
 “왜나라 수군에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지 못하면 조선은 또 다시 위기에 처할 거라는 걸 장군님은 아셨을 겁니다. 그게 감독인 저의 해석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전투에 나선 겁니다. 장군님의 그 생각을 길고 치열한 액션 시퀀스로 보여줄 때 관객이 당신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노량:죽음의 바다’의 액션 시퀀스는 단 한 차례도 바다에 배를 띄우지 않고 대부분 장면에 컴퓨터 그래픽을 덧입혀 가며 완성했다. 이 영화 해상 전투 장면은 한동안 국내에서 이보다 더 완성도 높은 액션 시퀀스는 나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빼어나다. “VFX(Visual Effect)에만 25개 업체 800명이 참여했어요. 국내외 웬만한 업체가 다 참여한 겁니다. ‘노량’에서 쓴 거의 모든 기술은 ‘명량’ 땐 할 수 없던 것들이에요”
‘노량:죽음의 바다’의 또 다른 난제는 이순신의 최후를 그리는 장면이었다. 이 3부작은 사실상 이 시퀀스를 향해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이순신 죽으면서 남겼다는 이 유명한 말을 모르는 관객은 없고, 많은 관객이 이 말이 영화에서 어떻게 구현됐는지를 보기 위해 ‘노량:죽음의 바다’를 찾을 것이다. 김 감독은 그 대사가 부담스러워서 극 중에서 쓰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도저히 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말에서 장군님의 진정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죽음과 무관하게 계속 싸워서 승리를 하라는 거죠.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서. 그래서 대사를 조금 고쳤습니다. ‘내 죽음을 밖으로 내지 마라. 싸움이 급하다. 결코 이 싸움을 이렇게 멈추어서는…’에서 끝나게끔요. 담백하지만 진정성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김윤석 배우도 격하게 공감해줬습니다”
김 감독과 이순신의 동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임진왜란을 다룬 8부작 시리즈 ‘7년 전쟁’을 준비 중이다. 캐스팅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고, 아직 촬영을 시작하진 않았다고 한다. ‘명량’ ‘한산’ ‘노량’이 이순신에 집중했다면, ‘7년 전쟁’은 이순신이 치른 전투보다는 당시 조선과 왜·명 사이 정치·외교를 본격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남쪽에서 무력으로 명과 왜를 밀어붙인 게 이순신이라면 한양에서 명과 왜를 압박한 게 오성과 한음의 한음 이덕형입니다. 이 드라마는 이덕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겁니다”
김 감독에게 이순신 3부작을 마친 소회를 들었다. 그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장군님한테 폐를 끼치진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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