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8월11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썸머스탠드 훨씬 더(THE) 흠뻑쑈’에서 싸이와 3만여 관객은 기분 좋은 미열에 들떠 있었다.

싸이가 앞서 같은해 7월에 낸 6집 타이틀곡 ‘강남 스타일’이 국제적인 인기에 탄력이 붙어간 시점이었다. 

미국 CNN이 ‘강남스타일’을 소개한 영상, 당시 유튜브에서 조회수 2400만건을 넘긴 뮤직비디오로 포문이 연 공연에는 CNN 그리고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과 ABC, 영국의 로이터 등이 대거 취재를 왔다. 

5년 만인 지난 4일 밤 같은 장소에서 열린 ‘2017 흠뻑쇼 서머 스웨그(SUMMER SWAG)’는 그동안 명실상부 국제스타로 떠오른 싸이의 공연꾼 면모를 확인한 자리였다. 낮 최고 기온 35도를 찍었을 정도 폭염이 절정에 다른 이날에 객석을 향해 150톤 가량의 물을 쉴 새 없이 뿌린 ‘흠뻑쇼’는 폭염을 제대로 잊게 만들었다. 

밤하늘을 다양한 색깔로 물들인 화약 1500발이 사용된 이날 공연은 이열치열의 자리이기도 했다. 열대야도 있었지만 싸이의 열정에 관객들은 열기로 화답하며,
무더위를 이겨나갔다. 냉탕과 열탕, 물불 가리지 않았던 이날 공연을 압축하는 수식이다. 

덕분에 3시간여 동안 몸을 사리지 않은 싸이 만큼 관객들의 체력 소비 또한, 상당했다. 싸이의 음악에 몸을 움직이지 않는 자는 유죄다. “지치면 지는 것, 미치면 이기는 것”이라는 싸이의 경구가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평균 27세의 2만5000여 관객이 모인 이 자리에서 30대 후반의 아재는 패배했다. 

지난해 12월24일 새벽 내내 싸이가 고척 스카이돔에서 밤새 4시간30분 동안 펼친 ‘올나잇 스탠드 2016 – 싸드레날린’을 ‘완공’한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호기롭게 공연을 맞이했지만 ‘흠뻑쇼’는 더 큰 벽이었다. 

애초 공연의 시작 시간은 오후 7시42분. 42는 싸이를 가리키는 숫자다. 하지만 금요일 밤 교통대란을 감안해 8분 지연됐다. 인근에서 프로야구에서 서울 잠실야구장을 함께 쓰는 ‘한지붕 두 가족’인 라이벌 두산 대 LG의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다양한 스타일의 파란색 옷(싸이 흠뻑쇼 드레스코드)과 파란빗 우비를 입고 싸이를 기다리는 보조경기장의 열기는 이에 못지 않았다. 

공연의 열기를 달아오르게 하는 영상이 나오고 싸이가 ‘아이 러브 잇’을 부르며, 공연의 화끈한 포문을 열었다. 싸이의 “뛰어”를 신호로 객석 곳곳에서 스프링클러 등을 통해 물줄기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객석 맨 끝의 취재석에 놓인 카메라와 노트북까지 물줄기가 닿았다. 취재석까지는 물줄기가 닿지 않을 거라고 해서 우비를 입지 않고 안심하던 차였다. 예상치 못했던 물포탄으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됐지만 시원한 해방감이 찾아왔다. 

강렬한 록으로 편곡된 싸이의 대표곡 ‘챔피언’과 ‘연예인’이 연이어 울려퍼지고 물줄기의 화력은 더 세졌다. 무려 50m 이상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객석을 적셨다. 객석을 종횡무진하는 물줄기들은 유채화를 덧칠하는 붓처럼 유려하거나 수묵화를 그리는 붓놀림처럼 우아했다. 

“내 눈에는 그대가 천사로 보여 / 내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고여 / 내 눈에는 모든게 아름다워요”라는 솔직한 노랫말이 인상적인 ‘내눈에는’이 싸이 공연에서 울려퍼지는 순간의 주인공은 싸이가 아니다. 객석의 미모를 갖춘 여성 관객들 모습이 카메라를 통해 대형 스크린에 비쳐지고 이들이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취하는 순간이다. 이날 여성 관객들은 마음껏 끼를 발산했다. 

‘오늘밤새’는 싸이 공연의 ‘스피리트’를 압축한 곡이다. 수영복을 입고 물안경을 낀 싸이의 모습을 형상화한 대형 인형이 함께 등장해 공연의 흥을 돋웠다. 

‘어땠을까’가 울려퍼지는 순간 물과 열기에 취해 몽롱해지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국민 여동생’ 아이유가 싸이와 이 곡을 함께 부르면서 게스트로 나온 것이다. 아이유는 습기가 가득찬 여름밤에 어울리는 촉촉한 목소리로 ‘밤편지’를 불렀고 이어 대표곡 ‘좋은 날’로 이 좋은 날에 의미를 더했다. 

아이유가 노래하는 사이 잠시 휴식을 취한 싸이가 등장하면서 2부가 시작됐다. 이 때 쓰러진 관객이 발견됐다. 큰 부상은 아니고 더위와 공연의 열기를 힘들어 한 관객이었다. 화끈했던 공연이었던 만큼 부상자가 가끔씩 눈에 띄었다. 싸이는 그때마다 공연을 완전히 멈추고 부상자가 객석에서 안전하게 벗어날 때까지 안전요원 등에게 길을 안내해주며, 도왔다. 그는 “안전요원과 의료진을 믿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공연에 임하겠다”고 했다.

싸이의 공연에서 자신들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뭉클한 순간인 ‘아버지’ 직후 울려 퍼진 ‘흔들어주세요’는 말 그대로 물줄기들까지 둘 흔들어버렸다. 수백개의 물줄기는 객석 곳곳을 적셨고 여기에 레이저의 수많은 빛줄기까지 가세하더니 수십개의 불꽃 줄기까지 등장했다. 말 그래도 물량공세였다. 

체력이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지쳐갈 타이밍에 싸이는 다시 결연한 의지를 다지게 했다. “행복해서 뛰는 것이 아닙니다. 뛰어서 행복한 겁니다”며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라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었고 ‘예술이야’에 맞춰 끊임없이 뛰었다. 

자이언티가 고마웠다. 게스트로 나선 그는 ‘꺼내먹어요’, ‘이 노래’, ‘양화대교’ 등 다행히 뛰지 않고 감상할 수 있는 곡들을 감미로운 목소리로 들려줬다. 

3부의 시작과 함께 들려준 ‘뉴 페이스’에서는 믿기지 않았지만 물줄기의 화력이 더 세졌다. 물줄기의 강도는 똑같았지만 약해진 몸이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옷은 더 젖었다.  

 싸이가 자신과 절친했던 고(故) 신해철을 위한 헌정곡 ‘드림’이 이어지자 몸보다 마음이 뜨거워졌다. 마지막 물줄기가 만든 가상의 스크린에 ‘어쩌면 인생은 긴 꿈일지도’라는 문구와 함께 신해철의 모습이 등장하자 객석은 먹먹해졌다. 

뜨거움과 시원함 거기에 아련함까지 찾아오자 다리는 끝내 못 버티어냈다. 물과 땀이 범벅이 된 상태로 공연장 맨 뒤에 털썩하고 주저 앉았다. 

이문세의 ‘붉은 노을’로 포문을 연 록 메들리에서는 마침내 패배 선언을 했다. 잠실 보조경기장 인근이 아파트라 오후 11시 이후에는 공연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내심 다행이었다. 밤을 새는 ‘올나잇 스탠드’보다 내내 뛸 수밖에 없는 ‘흠뻑쇼’가 아재에게는 더 큰 산이었다. 바쁜 스케줄에도 친히 이날 공연장을 찾은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회장은 공연장 풍경을 인스타그램에 남겼다. 

‘2017 흠뻑쇼 서머 스웨그’ 서울 공연은 이날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열린다. 이후 오는 11일 대전 월드컵 경기장, 1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26일 광주 월드컵 보조경기장으로 이어간다. 이미 전 공연 매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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