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영화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약 10년 전부터 시작된 히어로 영화 대세 흐름과 함께 날로 향상되는 영화 기술은 현재 더이상 못할 게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기술적 성취에 머물렀다면 ‘진화’라는 단어는 없었을 게다.

이제 블록버스터에 철학과 사상이 담기고 있다. 세계를 근심하고 비판하며, 나아갈 길까지 제시하는 정교한 서사가 흔히 말하는 ‘오락 영화’ 틀 안에서 흐른다.
‘혹성탈출:종의 전쟁’을 향한 압도적인 찬사와는 반대로 ‘트랜스포머:최후의 기사’에 쏟아진 조롱은 블록버스터에 대한 관객의 기대가 어떤 것인지 방증한다.

1억9700만유로(약 2600억원) 프랑스 영화 최대 제작비를 쏟아부은 뤼크 베송 감독의 새 영화 ‘발레리안:1000개 행성의 도시’(이하 ‘발레리안’)는 이런 점에서 볼 때 시대착오적인 블록버스터다. 각본·연출·제작을 오가며, 무수한 작품에 참여한 베송 감독의 영화 열정을 폄하할 수는 없지만, 그의 최근 연출작은 실망스러운 게 사실이고 ‘발레리안’ 또한, 이 맥락 속에 있다. 영화는 20년 전 그가 내놓은 SF영화 ‘제5원소’(1997)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일텐데 마치 그때처럼 시각 효과에만 신경썼을 뿐 그 외에 부문에서의 발전은 보이지 않는다.

‘발레리안’은 피에르 크레스탱과 장 클로드 메지에르가 지난 1967년 발표해 2010년까지 22권을 내놓은 만화 ‘발레리안와 로렐린’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28세기 수천 종의 외계종족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우주. 우주수호부 특수요원 발레리안과 로렐린은 30년 전 사라진 행성 뮐의 비밀과 관련이 있는 물건을 찾아 오라는 명령을 받고 키리안 행성으로 간다.

가까스로 물건을 빼낸 두 사람은 우주수호부 본부가 있는 온갖 우주 문명이 집합체인 우주정거장 알파로 복귀하지만, 이 물건을 노리는 존재들과 또 한 번 맞닥뜨린다.

이야기와 플롯이 모두 단순한데다가 각 캐릭터들 또한, 특별한 매력을 갖추지 못해(더 정확하게는 부여받지 못한 것이다) 관객이 흥미를 가질 만한 갈등 요소가 전무하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발레리안과 롤렐린이 아니라 특수효과다. 아마 베송 감독이 원작 만화를 영화화하겠다고 마음 먹은 건 그 안의 인물과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다기보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 더욱 흥미로웠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이 우주 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영화 기술이 갖춰지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한을 풀어내듯 화려한 비주얼 쇼를 펼쳐보인다.

장르를 불문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특별한 재능을 보여줬던 연출가답게 ‘발레리안’의 그것 또한,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큰 화면에서 3D 보면 더 좋다).

우선 각종 외계인의 모습이 흥미롭고 미래 기술에 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몇몇 설정들은 관객의 관심을 끌 만하다. 그러나 지금 관객은 137분을 눈요기 만으로 견디는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 신기한 광경은 이미 ‘아바타’(2009)에서 충분히 봤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2005~2012)에서는 허무맹랑한 영웅 만화가 어떻게 현실에 단단히 발붙인 영화가 될 수 있는지를 봤다. 단순히 영화의 규모를 키우는 것만으로 관객을 끌어모으는 시대는 지났다.

안타까운 건 국내에도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배우 데인 드한의 존재다.

드한은 지난 2012년 ‘크로니클’에 출연해 퇴폐적인 카리스마와 반항적인 눈빛으로 관객과 평단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이후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2013) ‘라이프’(2015) ‘투 러버스 앤 베어’(2017) 등에서 활약하며, 제2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로 불렸다. 이 촉망받는 배우는 ‘발레리안’에서 쉽게 소모돼 눈요깃거리로 전락한다. 관객이 드한에게 바라는 건 팝스타 리한나의 춤을 보면서 넋을 놓은 모습이 아니다. 물론 이런 상황은 배우의 연기 문제라기보다는 연출의 문제로 봐야 한다.

워낙 일찍 영화 일을 시작한 탓에 나이 든 감독처럼 보이지만 베송 감독은 지난 1959년생으로 아직 60대도 되지 않았다.

마틴 스코세이지·클린트 이스트우드·우디 앨런 등 지난 1970~80대에도 왕성히 활동하는 감독들도 있다.

물론 베송 감독이 이들과 견줄 정도의 연출가는 아니더라도 관객은 그에게 여전히 기대하는 게 있다. 한 번 쯤은 ‘레옹’(1994)과 같은 시대를 앞서간 작품을 다시 한 번 선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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