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 기자 /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는 실패한 혁명이야기다. 동시에 위대할 수 있었으나 그르친 사랑이야기다. 

브루투스가 양부 시저에게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힐난을 받으면서까지 그에게 칼을 들이민 건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올해 17회를 맞는 ‘2017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스파프)의 개막작인 루마니아 극단 클루지 헝가리안 씨어터의 ‘줄리어스 시저’는 이 사랑의 정서에 대해 파고든다.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이 연극을 연출한 루마니아의 거장 실비우 푸카레트는 가혹한 정치 드라마에서 감정의 결을 톺아본다.  
 

대표적인 장면은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가 목소리를 높이는 각각의 연설. 스스로 선(善)이라 여기는 공화제를 위해 절대군주의 길로 의기양양하게 걸어가던 시저를 죽인 브루투스. 
 

그는 자신의 로마에 대한 사랑을 역설하며, 군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이성에 호소한 정치공학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시저의 죽음 뒤 카타르시스를 폭발시키기를 원했던 군중의 무의식적인 욕망이 배출된 결과였다. 
 

백미는 안토니우스의 연설이다. 이상가(Idealist)인 브루투스는 시저의 수족이었던 그에게 군중 앞에서 고인을 추모할 기회를 준다. 브루투스의 아량은 그의 장송곡 서주(序奏)가 돼 돌아온다.
 

“시저는 가난한 사람들이 울면 따라 울었다. 나는 그에게 왕관을 세 번이나 바쳤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것이 야심가의 태도인가.” 
 

안토니우스가 피범벅이 된 시저의 시체를 보여주며 열변을 토하자 군중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로마를 향한 브루투스의 열렬한 마음보다 시저를 사랑한 안토니우스의 뜨거운 마음이 결국 승리했다. 
 

푸카레트 연출은 안토니우스의 연설 장면에서 끊임없이 비를 뿌린다. 안토니우스는 비인지 눈물인지 침인지 모를 물로 범벅이 된 채 격정적으로 말들을 쏟아낸다. 동시에 시저의 피는 씻겨 내려간다. 동시에 시저의 죄와 함께 그에 대해 군중이 품은 적개심도 씻겨 내려간다. 
 

‘줄리어스 시저’는 감정적으로 우아한 멋진 장면들이 가득하지만 맥락과 크게 상관없이 가터벨트를 착용한 여성의 이미지를 전시하는 장면은 의아했다. 
 

다른 장면에서도 여성의 이미지가 소비되는데 지난 2014년 김광보 연출이 명동예술극장(현재 국립극단과 통합) 제작으로 선보인 ‘줄리어스 시저’에서 남자배우들로만 현대적인 정치 심리극을 선보인 걸 기억하면 아쉬운 부분이었다. 
 

또한, 지난해 스파프에서 선보인 슬로베니아 연출가 토마스 판두르의 ‘파우스트’에서도 물이 중요한 이미지로 사용됐는데 이 축제에서 공연하는 동유럽 국가 작품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물의 이미지도 반복되는 인상이 짙었다. 
 

헝가리어로 공연이 진행됐는데 첫날 배우가 대사하는 장면과 영상에 한국어 자막이 나오는 타이밍이 겹쳐지지 않아 극이 낯선 관객이 이해를 하는데 불편도 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카레트 연출은 ‘줄리어스 시저’에서 거대하지는 않지만 상황을 압축하는 아이디어와 은유로 고전을 현대극으로 탈바꿈시킨다. 군중의 환호는 점쟁이가 든 마이크 하나로 수렴됐다 울려 퍼진다. 
 

푸카레트 연출은 시저가 노트북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스크린에 비춰 원로원과 권력다툼을 하는 회의를 보여주는 장면을 비롯해 현대적인 기기도 활용했다. 고전에서 현재에도 통용되는 정치·사랑·감정을 뽑아낸 현대극이었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비롯해 시저를 죽인 이들이 거의 헐벗은 채 좁은 테이블 위에서 저희들에게 악다구니를 쓰는 장면은 고대 로마나 2017년 한국의 정치판 민낯의 축약판이었다. 드론이 그들 위를 유유히 날며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 이번 공연에서 가장 인기를 끈 캐릭터는 시저의 곁을 지키는 개(Dog)였다. 시저 역을 맡은 졸트 보그단의 실제 반려견 ‘엔젤’이다. 길이 120cm, 키 98cm, 무게 40kg의 다소 큰 체구다.
 

개막 전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로니에 공원을 비롯해 대학로 주변을 산책하며 시민의 관심을 끌기도 한 엔젤은 이날 1막 공연 중반까지 주어진 연기와 동선을 소화하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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