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한 장면.

 두 번의 살인으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될 남자와 그가 극형(極刑)만은 피할 수 있게 하려는 변호사, 그리고 이 살인자와 피해자의 딸 사이에서 벌어진 어떤 일들…. 

오는 14일 개봉하는 영화 ‘세 번째 살인’이 125분에 걸쳐 바라보는 이야기다. 평범한 감독이었다면 반전이 주는 장르적 쾌감에 골몰했겠지만 이 작품의 연출가는 다른 길을 간다. 사건의 실체를 조금씩 드러내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낸 자리에 남은 건 깊은 질문 하나다. ‘진실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영화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55·是枝裕和)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일본 감독으로 꼽힌다. 

그에 앞서 이와이 지나 이누도 잇신 등이 있지만 이정도 마니아층을 형성한 연출가는 없었다. 2~3만명만 봐도 흥행에 성공했다는 말을 듣는 우리나라 다양성영화 규모를 생각하면 전작 세 편을 본 관객이 각각 10만명이 된다는 건 고레에다 감독의 인기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태풍이 지나가고’ 9만3200명, ‘바닷마을 다이어리’ 10만1500명,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12만5400명).

개봉도 하지 못했던 데뷔작 ‘환상의 빛’(1995)이 지난해 21년 만에 한국을 찾고 내년 초에는 지난 2001년 국내 개봉해 1000여 명이 보는 데 그친 ‘원더풀 라이프’(1998)가 다시 관객을 만나는 것도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들이 한국 관객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알게 한다. 지난달에는 자서전 격인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국내에 내놨다.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에는 인간과 사회의 참모습을 직시하려는 절절한 태도가 있다. 

새 영화 ‘세 번째 살인’은 그동안 감독이 천착해온 가족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난 법정스릴러물이지만 영화라는 도구로 이 세계의 단면을 어떤 장르 못지않게 날카롭게 포착해낼 수 있다는 자세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고레에다스러운’ 작품이라는 평가다. 그를 향한 박수는 고레에다 감독이 영화 안에 담은 마음들이 한국 관객에게 전해졌다는 말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버려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아무도 모른다’(2005)로 칸영화제에 초청받은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한다.

“악인이 나오면 이야기(세계)는 쉬워지겠지만 그렇게 안 했기에 관객은 영화를 자신의 일상으로 끌어들여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요”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세계를 들여다본 그의 경력은 고레에다의 영화가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

‘태풍이 지나가고’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같은 최근작은 따뜻한 가족이야기이지만 사실 고레에다 감독은 때로 누구보다 냉정하고 잔인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우리의 맨 얼굴을 마주보게 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세 번째 살인’은 물론이고 ‘환상의 빛’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2009) 등이 그렇다. 가족 혹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이 영화들은 우리가 모른 체했던 솔직한 감정들을 기어코 꺼내어 볼 수밖에 없게 한다. 

김에리 문화평론가는 “결국 영화의 성패는 관객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며 “고레에다 감독은 평범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인물의 감정을 지독하게 세밀하게 그려내 관객이 결국은 공감할 수밖에 없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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