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먹을 땐 이상하지만 점점 괜찮아지는 음식이 똠얌꿍이죠. 우리 영화가 ‘똠얌꿍’ 같다고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신맛, 단맛, 이상한 맛 등이 다 들어있죠. 그런데 계속 먹다가 그 맛에 중독되면 못 끊을 정도가 되는 것 아니겠어요?”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이 12년 만에 들고온 영화 ‘조작된 도시’를 베트남 음식 ‘똠얌꿍’에 빗대며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삼청동 인근에서 만난 박 감독 표정은 상당히 밝았다. 개봉 첫 날 15만여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면서 일단 출발은 호조세를 보였기 때문.
 

“개봉 당일에 생각보다 가족과 함께 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제가 되게 바라던 바였죠. 영화를 통해 아이들과 친해지고, 끝나고 나면 수다거리가 많이 생기는 영화였으면 했습니다.” 
 

‘조작된 도시’는 게임에 빠져 사는 백수인 주인공이 단 3분16초 만에 살인자로 조작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고 반격을 펼쳐나가는 내용을 그린 범죄액션영화다. 게임을 소재로 한데다 젊은층의 감각적인 취향에 맞춰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탓에 기존 영화와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
 

때문에 영화 제작 당시 출연배우나 스태프 등에게 영화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상당히 생소하다는 반응들이었다는 것이다.
 

“(영화에 대해 설명할 때)진이 빠지는 느낌도 들었어요. 소를 끌고 담을 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제 영화는 도대체 어딜 향해 가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들이었어요.”
 

게임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 데 대해 박 감독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힘주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과거와 차이가 나는 게 뭔가를 고민해봤는데 이 시대의 젊은 사람들이 너무 무기력해졌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우리 때는 패기와 열정, 자신감이 넘쳤는데, 지금은 20대가 가장 약자가 돼있는 것 같았다”고 돌이켰다.
 

그 순간 이들을 대상으로 한 청춘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도피처가 어딜까 고민한 결과 ‘클럽’과 ‘게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중 돈 없는 20대의 탈출구라는 점에서 ‘게임’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다. 특히 현실과는 또 다른 완벽한 커뮤니티가 게임 속에도 형성돼있다는 점이 그의 눈에 쏙 들어왔다.
 

“지금 젊은 세대는 모두가 경쟁자라는 얘기를 듣고 사니 기본적으로 상대를 경쟁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서로 간에도 소통이 약간 이상하더라고요. 하지만 게임의 세계로 들어가면 동지가 형성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만드는 커뮤니티는 오히려 되게 끈끈하죠.”
 

이런 소재로 만들다 보니 영화도 상당히 감각적, 직관적으로 구성하는 데 노력을 들였다. 영화를 꼭 논리적으로 설명해내기보다 직관적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기존 방식대로 영화를 이해하거나 평가하는 이들은 비판적인 시선을 보냈다. 박 감독은 “한국영화가 계속 한 가지 맛으로만 가는 데에는 그렇게 평하는 사람들의 책임도 있다”고 강조했다.
 

“유재석이 너무 좋지만 지겨울 것 같아요. 김구라도 있으면 같이 발전하고 거기에 김희철이 있으니까 신선한 것도 나오면서 건강해지고 다채로워지는 건데 한 가지만 있는 영화계는 숨막혀 죽을 것 같거든요. 왜 여전히 똑같이 옛날 얘기를 반복해서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전작인 ‘웰컴 투 동막골’의 성공이 이번에는 전혀 새로운 작품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 때문에 12년이라는 시간도 걸렸다.
 

“(광고일을 했던)이방인이 들어와 의외로 잘됐잖아요. 그때 약간 영화계로부터 이상한 소외감 같은 걸 느꼈어요. 너무 잘 된 자에 대한 시기심 같은 게 있었죠. 술에 취해서 ‘네가 깊이 고민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뭘 안다고 그러느냐’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을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할 수는 없었죠. 좀 더 신중하게 하고 싶은 생각에 꽤 길게 작품에 매달리게 됐어요. 고행의 순간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일부 영화 속 장면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주인공 ‘권유’가 시골길에서 흑인 부부의 차를 얻어 타는 장면의 경우 한국인 부부가 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본인 생각에도 이미 살인범으로 몰린 사람이 차를 태워달라고 했을 때 선뜻 태워줄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울’ 역의 심은경이 전화에 대고 욕설을 퍼붓는 장면도 미리 시나리오에 들어있던 내용이었다. 오히려 그 배역을 심은경으로 미리 점지해둔 것이 아니었다. 보이스피싱 도중 오히려 피해자가 범죄자를 골탕을 먹인다거나 하는, 그 당시 유행했던 사례 등에서 따왔다.
 

“그리고 젊은 애들의 언어 중에 욕설이 엄처 많다는 것도 특징이죠. 우리 딸도 자기도 모르게 가끔 욕이 튀어나와요. 이것도 얘들의 문화다 싶었습니다.”
 

이번 정부에서 논란이 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박 감독은 “불행한 일인 것 같다. 밝혀졌으니 이제 없어지지 않겠느냐”며 “아까 얘기한 것처럼 영화도 편향적으로 되는 건 문제”라고 답했다.
 

그는 앞으로 하고 싶은 장르도 이번 작품처럼 열려 있다고 했다. 다만, 호러와 멜로는 사양이다.
 

“제가 호러와 멜로만 못보고 다른 건 다 좋아합니다. 멜로영화를 못 보는 이유는 사랑을 놓고 갈등하고 싸우는 걸 힘들어하기 때문이고 호러영화는 음산한 분위기를 되게 못 견디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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