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정행산 다음 주로 예정된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어제(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이번 평양 정상회담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다시 한 번 큰 걸음을 내딛는 결정적인 계기로 만들어내야 한다”면서 “이처럼 중차대한 민족사적 대의 앞에서 (국회는)제발 당리당략을 거두어 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의 대북안보(對北安保)는 단순하고 일상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죽고 사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문제다. 나아가 북한 핵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 평화에도 직결된다.

미국의 대표적인 정책·군사분야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에 의하면 북한은 핵무기·미사일 말고도 국제적으로 개발과 사용이 전면 금지된 VX 등 맹독성 화학무기를 현재 약 5천여 톤 정도 개발해두고 있으며, 이 같은 화학무기 1천 톤이면 대한민국 인구의 80%에 해당되는 약 4천만 명을 한 순간에 몰살시킬 수 있다고 한다. 해외 전문기관들은 북한이 현재 핵폭탄을 약 30여개 정도 개발해두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과 두 차례에 걸친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로도 북한 김정은은 수십 개로 추정되는 핵무기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시설을 실질적으로 없애는 조치는 시작도 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아직까지는 북에 대해 좋은 말로 어르고 있지만 미국의 인내심은 점점 한계선에 다가서고 있다. 국가 간의 질서는 여전히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된다. 김정은은 이번 남북 평양 정상회담을 기회로 삼아 현명한 결정을 해야 한다.

지금 북한의 핵 보유가 불러올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치 상황은 우리의 통제를 넘어서고 있다. 북이 끝내 핵을 내려놓지 않으려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어느 순간 돌변할 수 있고, 세계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은 ‘선제타격’을 통한 북핵 제거, 또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교체)’로 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칫 이 땅에 참화가 전개될 수도 있다.

북한의 지금과 같은 행태가 계속되면 미국은 더 이상 좌고우면(左顧右眄)하거나 참지 않고, 어느 순간 전광석화처럼 선제타격을 실시해 지구상에서 북한이라는 존재 자체를 아예 설거지해버리거나 레짐 체인지 또는 김정은 참수작전을 단행해 판을 뒤집어버리겠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마지막 카드다.

이럴 경우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자위권’과 국제협약인 ‘비핵화’ 그리고 ‘인권’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특유의 저돌성으로 밀어붙이면 중국으로서도 운신의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미국과 대척점에 섰다가는 국제금융이나 교역분야에서 중국은 고립을 면할 수 없고, 가까스로 부흥하고 있는 경제가 그야말로 곤두박질 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무기체계는 거의 공상과학 수준이다. 미국의 연간 국방예산은 최대 800조원을 약간 밑도는 수준으로, 세계 국방비 순위 2위부터 10위까지인 중국·러시아·독일·프랑스·영국 등 9개 군사강국들의 국방비를 다 합친 것과 맞먹는다.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최고의 인력·창의력·기술력 등 소프트 파워와 무궁무진한 달러 자본력 등 하드 파워의 총합(總合)이다.

지금 한반도와 동북아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는 지점을 지나가고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규정하기 시작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부터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인내정책’은 이미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집권 말기인 2016년부터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북한이 2016년 9월 5차 핵실험 도발을 강행하자 대니얼 러셀 당시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그해 10월12일 공개석상인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이 핵공격을 실행하려고 움직이는 순간 김정은은 그 즉시 죽는다”고 선언했다. 

미 국무부 내에서 한반도문제를 포함해 동아태정책을 총괄하는 책임자가 김정은을 겨냥해 ‘그 즉시 죽게 될 것(immediately die)’이라는 극히 비외교적이고 직설적인 초강경 경고를 작심하고 거침없이 한 것은 전에 없던 이례적인 일이었다. 

북한의 5차 핵실험 도발 이후 미국에서는 ‘선제타격’과 관련된 언급이 잇따라 봇물을 이루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다수 의원들이 대북 선제타격에 동의했고, 마이크 멀린 전 합참의장과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 등 고위 장성들은 일제히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북 선제타격을 강력 촉구한 바 있다. 

대북 선제타격은 트럼프 행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여러 대북 옵션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고, 역대 미국 행정부 중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실제로 단행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만에 하나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할 경우 북한의 반격과 한·미의 재반격으로 한반도에서 6·25전쟁 이후 가장 파괴적인 참화가 발생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일본과 호주 등 아시아의 미국 우방국들까지 개입하고, 중국이 미국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면서 북한을 음으로 양으로 적극 지원하고 나서면 한반도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은 세기에 걸쳐 온갖 세계문제에 개입해 국제사회의 경찰국가로 역할해오는 동안 과부하에 걸려 있고 미국 국민은 피곤하다. 이제 남의 나라 문제 챙기는 일보다는 미국 내부문제에 충실해야 한다는 민심의 결과가 미국 우선주의와 미국 제일주의의 복합인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내세운 트럼프의 등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기다릴 여유가 없다. 가능한 빨리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에서 손을 떼려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정치인이 아니라 현실주의자이며 거래주의자다.

저작권자 © 경기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