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행산  주필 지금 많은 국민이 남북평화와 공동번영이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들떠 있다. 오랜 세월 첨예한 적대적 관계를 이어온 남과 북이 마침내 평화를 공유하면서 더불어 발전하게 됐다는 메시지는 요즘 같은 경제파탄의 와중에서 큰 희망이 되고 위안이 된다. 평화를 바라지 않는 국민은 없다. 

그러나 1천여 기가 넘는 북의 장사정포와 가공할 각종 화학무기, 직업군이나 다름없는 고도로 훈련된 120만이 넘는 인민군을 전진 배치해놓고 수십 발의 핵폭탄을 개발해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는 북의 대남 의도와 상황은 여전하다.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추상적인 선언에 무턱대고 들뜰 일이 아니다. 더욱이 아직은 불투명한 ‘평화’를 다 된 것처럼 말하면 자칫 혹세무민이라는 비난을 부를 수도 있다. 말로 평화를 선언하기만 한다고 만사형통으로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정상외교가 붐을 이루고 한반도에 평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지금 북한 핵문제는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가. 외신에 따르면 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싱가포르 회담 후 핵무기·물질을 동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려오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북핵 폐기(CVID)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  CVID를 ‘강도적 요구’라며, 그 말만 나오면 경련을 일으키고 반발한다. 

북한은 핵을 진정으로 포기할 의사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은 그저 사진 찍고 악수하고 요란만 떤 셈이었고 남북 정상회담 역시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이동식 발사대 확보로 쓸모가 없어진 미사일 시험장을 해체했다. 그리고 역시 필요가 없어진 영변 핵시설 해체를 종전선언·대북제재 완화와 맞바꾸자는 조건부 제안을 내놓고 버티고 있다. 이게 전부다. 

북은 핵무기를 플루토늄에서 고농축 우라늄탄으로 바꾼 지 오래다. 영변원자로는 더 생산할 필요가 없는 플루토늄 생산시설이고 풍계리 핵실험장이나 미사일 발사대처럼 고철이 다 돼 노후된 데다 어차피 폐기해야 하는 쓸모없는 시설이다.

‘북핵 폐기’란 쓸모없어진 미사일 시험장과 어차피 무용지물이 된 플루토늄 생산시설을 해체하는 ‘쇼’가 아니라, 수십 개의 핵탄두와 고농축우라늄 농축시설을 폐기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 폐기를 할 뜻이 진정으로 있다면 이 핵무기와 물질, 우라늄 농축시설의 정확한 규모와 위치 등을 담은 북핵 신고서를 내어놓고 국제사회로 해금 투명하게 사찰하도록 하는 게 순서다.

북한이 핵을 내려놓는 경우는 핵을 버리지 않으면 죽게 될 때뿐이다. 북한이 태도를 바꿔 핵을 폐기하겠다며, 정상회담에 나선 것은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를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려면 북의 장사정포와 핵무기 등의 일차적 표적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이 국제공조에 적극적으로 앞장서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길 밖에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평화는커녕 대한민국 5천만 국민의 죽고 사는 문제가 북한 손에 맡겨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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