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기지역 지정 확대 등 조치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은 이날 경기 광명의 주공3단지 아파트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정석철 기자  /  급상승한 서울 집값이 진정 국면에 진입하자 이제 시장은 ‘버블’ 논쟁으로 전선을 옮겨가는 분위기다.

실수요자들이 ‘미친 집값’에 숨죽이며 집값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이 불과 몇 개월전. 이제 집주인들은 대세 하락에 대한 우려를 토로 하고 있다.

이미 시장은 정부가 잇따라 내놓는 대출규제로 매도-매수자간 ‘힘겨루기’ 장세로 급박하게 전개됐다. 매매시장은 거래절벽을 넘어 거래실종 사태로 치닫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 ‘부동산 불패신화’가 만든 버블이 1990년대 들어 급격하게 붕괴된 것에 필적하는 폭락장이 찾아올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급격하게 오른 만큼, 급속하게 빠지면서 실물 경기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4일 전문가들은 당시 일본과 버블의 규모와 주체, 정부·통화당국의 대응 등 차이가 있어 일본식 장기 침체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지는 않았다.

일본식 거품 붕괴를 우려하는 쪽은 서울 집값이 지나치게 급격하게 상승했다는 점을 가장 큰 근거로 든다. 

자고 나면 하루마다 수천, 1억씩 뛰는 것이 현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버블(bubble)의 사전적 정의는 ‘투자자들이 합리적인 기대에 의해 자산의 시장 가격이 가치를 크게 상회하는 것’을 뜻한다. 최근 매매시장에서 벌어지는 ‘눈치싸움’은 사실상 버블의 전조다. 수요가 없는 집값은, 실체 없는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다만 버블의 규모면에서는 일본과 직접적인 비교가 어렵다.

일본에서 땅값이 가장 많이 상승한 때는 1987년으로 한해 30.7%(동경, 오사카, 나고야, 요코야마, 교토, 고베 등 6대 도시 기준)가 뛰었다. 당시 일본 물가 상승률이 엔화절상과 유가하락 등에 힘입어, 연평균 0.93%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상승세가 급격하다. 당시 도쿄에서 일왕이 사는 번화가 한 구역인 고쿄(皇居) 지역의 토지를 모두 팔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전체를 살 수 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비쌌다고 전해진다. 우리의 경우 올해 1~10월 서울 집값 상승률은 7.21%로, 전년(3.41%)의 2배 수준으로 매우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버블의 규모면에서 따라가기 힘들다.

홍춘욱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는”강남 등 일부 지역과 단지에만 지나치게 많은 자금이 몰리면서 ‘국지적’인 버블을 만들어 내고 있다”며 “서울 전역의 집값이 버블이다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누가 버블 생성을 주도했는지도 다르다. ‘부동산 투자 사이클’의 저자, 인기 부동산 블로거 봄날의곰(본명 김영기)은 “일본의 버블은 기업이 국내외 주식·채권시장을 통해 조달한 어마어마한 자금을 부동산 시장에 투자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가계가 상승을 주도한 국내 주택시장과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은 ‘종신고용제’를 기반으로 한 직원 사택 문화 탓에 기업들이 도심 부동산 구입 열풍이 불었고 이어 도심에 매물이 사라지자 ‘리조트 개발붐’으로 열기가 이어졌다. 그는 “기업이 레버리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하자, 은행권 부실로 이어졌고 급격한 침체로 이어졌다”면서 “우리는 개인이 파산하더라도 금융권의 부실 책임이 한정돼 있어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설명했다. 

결국 일본처럼 급격한 하락이 국내 부동산 시장을 찾아오긴 힘들다는 게 두 사람의 공통된 의견이다. 

홍 팀장은 “국내 부동산 시장은 국지적이고 계열화 되면서 서울과 지방도 서로 다른 시장이 됐다. 경기 사이클도 동일하지 않다”면서 부동산 시장에 몰아치는 충격도 다소 국지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봄날의곰도 “일본은 기업이 일으킨 레버리지로 은행이 부실화되고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급하게 올리는 등 매우 특수한 상황이었다”면서 “우리 정부에서도 부동산 시장의 급격한 침체는 막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급격한 하락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일본의 경우 버블 붕괴가 경기 둔화 수준으로 판단하고 재정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에 치중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1992~2000년 8년간 100조엔 이상의 재정을 투입했으나 경기부양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90년 시행된 부동산관련융자 총량규제도 일시적인 주담대 증가율이 꺾이자 불과 1년여 만에 해제하는 등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했다.

또 기준금리 인상의 속도면에서도 실기했다는 평가다. 일본은 1980년대 중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이어왔고 그 결과 미일간 무역마찰 문제는 ‘프라자 합의’를 통해 급격한 엔고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일본 정부는 산업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하지만 속도가 지나치게 급했다. 1986년 1월부터 1987년 2월까지 5차례 걸쳐 금리 인하를 단행해 불과 1년새 5%에서 2.5%로 불과 1년새 하락해 시중 유동성이 급증했다. 반대로 이후 버블이 꺼지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상도 급격하게 진행됐다. 당시 1989년 5월부터 1990년 8월까지 15개월만에 또다시 5차례에 걸쳐 3.5%포인트 인상해 6%대로 높였다. 급격한 금리변동에 기업은 물론 가계도 우후죽순으로 쓰러졌다.

국내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우리 수출시장은 반도체만 성장세를 굳히고 있을뿐 다른 제조업은 고군분투 중이다. 주식시장은 침체 중인 반면, 부동산 시장은 뜨겁다. 특히 집값도 서울, 대구와 광주 등 일부 5대 광역시, 그것도 일부 지역과 단지만 상승하며 상승세 파편화되고 있는 중이다. 일본이 1987년 주식시장이 41.5% 급등해 부동산 시장 성장을 선도했던 것과 분위기가 또 다르다. 홍 팀장은 “서울 집값은 글로벌 경기와 매우 밀접하다”면서 “글로벌 경기가 나빠지고 수출이 꺾인다면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서울 집값 하락의 속도는 경기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리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 버블 생성과 붕괴의 흐름을 면 당시 일본 국민들의 ‘과도한 자신감’에 읽힌다. 일본은 1980년대 중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와 저금리 기조를 통한 통화량 증가에 힘 입어 적극적인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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