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모래밭에 남은 무늬일까, 아니면 하얀 포말의 기억뿐일까. 금세 왔다가 밀려가는 파도를 우리가 잡을 방법은 과연 있었을까.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감독 데릭 시엔프랜스)의 영어 원제는 ‘바다 사이 등대(The Light Between Oceans)’다.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M L 스테드먼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영화는 원제 그대로 광활한 바다에 둘러싸인 무인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전쟁의 트라우마를 입은 ‘톰’(마이클 패스밴더)이 외딴 섬 ‘야누스’에 등대지기로 자원하면서 시작된다.

톰은 섬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아름다운 여인 이자벨(알리시아 비칸데르)을 만나 사랑을 싹틔우고 얼마 후 야누스에서 신혼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2번의 유산으로 고통스러워 하던 그들에게 운명처럼 파도에 떠내려온 아기는 이후 그들을 폭풍처럼 격렬한 인생의 갈림길로 내몬다.
 

푸른 바다와 등대를 배경으로 영화는 한 편의 그림처럼 서정적인 영상을 담았다. 그러면서도 세찬 비바람 속에서 인간의 운명이 얼마나 잔인하게 내몰릴 수 있는지, 또 이런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세 명의 배우들은 영화 속 인물들의 상실감을 세밀하게 표현해낸다. 가슴 깊은 곳에 고통을 감춰둔 마이클 패스밴더의 연기와 함께 아이를 향한 모성애를 격정적으로 표현해낸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연기는 이들의 상처를 진하게 드러낸다.
 

여기에 남편과 딸을 함께 잃은 여인으로 선택의 기로에서 갈팡질팡 하는 여인을 담아낸 레이첼 와이즈의 커다란 눈망울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적신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을 수상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은 영상과 결합해 한 편의 소나타처럼 귀에 와닿는다.
 

과연 우리는 이성과 감정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까.
 

영화는 보는 내내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대입해보게 만든다. 
 

제목과 같이 마치 ‘파도가 지나간 자리’처럼 곧바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러나 오랜 시간 바위를 깎아내리는 파도처럼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오는 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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