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 기자 / 이해성 극장장(극단 고래 대표 겸 연출)이 광장극장 ‘블랙텐트’ 깃발을 뽑아내자 환호성이 터졌다. 지난 1월7일 항해를 시작한 이 극장의 돛을 2달여 만에 내린 것이다. 블랙텐트 운영위원 겸 광화문캠핑촌 촌장인 시인 송경동은 “본격적인 항해는 이제 시작”이라고 외쳤다. 

지난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계획대로 해체 수순을 밟았던 광장극장 ‘블랙텐트’의 운영위원회가 18일 오전 텐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체를 선언했다. 

텐트 위에서 펄럭이던 깃발을 내리는 것을 시작으로 천으로 대신한 현판을 내렸다. 조명 등 집기를 텐트 밖으로 옮기는 작업은 아침부터 일찌감치 시작됐다. 

이 극장장을 비롯해 이날 함께한 연극인 50여 명은 “광장극장은 해체하지만 이 극장이 내세웠던 연극의 공공성, 극장의 공공성, 예술의 공공성은 촛불시민이 열어놓은 새로운 시대에 재정립될 국공립극장에서 구현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공연은 계속됩니다’라는 기조를 내걸었던 광장극장블랙텐트는 탄핵 선고 전날인 지난 9일까지 광장극장블랙텐트페스티벌 ‘봄이 온다’를 진행했다. 선고 다음날 11일에는 야외퍼포먼스 ‘우리가 헌법이다-헌법퍼포먼스’를 마쳤다. 

블랙텐트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터전을 잃은 연극계가 세운 자발적인 네트워크다. 연극인, 예술가, 해고노동자, 시민들이 함께 광화문 광장에 설치했다. 

이해성 극장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임시 공공극장은 정부 등의 압박으로 한국의 공공극장이 거의 외면했던 세월호 희생자,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각종 국가범죄 피해자들, 해고 노동자 관련 연극을 다루면서 이슈가 됐다.

천막극장을 제공한 나무닭움직임연구소 외에 무대, 객석, 조명 등 극장 설비부터 무릎담요, 소화기, 핫팩 등 운영 물품들까지 모두 기부와 후원으로 마련됐다

지난 1월10일 개관식, 같은 달 13일 개관축하공연에 이어 16일 개관공연 ‘빨간시’를 시작으로 지난 9일까지 총 72개 공연을 선보였다. 약 400명의 예술가가 참여했으며, 관객은 3373명으로 평균 관객수 91명이었다. 

지난 16일 광장극장블랙텐트의 마지막 프로그램 ‘광장극장블랙텐트, 그 이후’를 진행했다. 김서령 PD(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공동대표), 조재현 극단 희망새 대표, 극작가 겸 연출가이양구(극단 해인) 등이 모여 천막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유지보다 이 극장의 경험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본 연극인들이 속한 서울연극협회의 송형종 회장은 이날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 ‘블랙텐트’는 공공극장이 무엇을 해야할 지 좌표가 됐고 발언이 됐다”며 “대학로가 그 정신의 바통을 이어받아야한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등 검열 문제를 수면 위로 부각시키는데 젊은 연극인들의 힘이 컸다. 연극계의 민주주의를 위한 토론을 지속해온 대학로X포럼, 검열에 대해 ‘부조리한 현실에 압도당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평을 받은 20여개 대학로 극단이 참여한 ‘권리장전2016-검열각하’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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