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최경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2개월 만에 해파랑길을 찾았다. 지난해 11월, 포항 도구해변까지 걷고 한 해를 보내고 난 후 찾은 바닷바람은 칼칼했다. 백두대간 종주산행을 할 때는 추우나 더우나 눈·비가 오나 종주산행을 이어갔는데 해파랑길 트레킹은 백두대간 종주처럼 목표 여행임에는 틀림없으나 여행자 모두가 꼭 이어 가겠다는 마음이 적은 것 같다. 그동안 함께했던 25명이 18명으로 줄어든 것을 보면 짐작이 간다. 
예전에 포항제철이라고 불렀던 포스코 건물이 형산강가에 늘어서 있었다. 울산을 여행하며, 현대중공업을 지날 때 큰 규모에 놀랐었는데 오늘 또 다시 우리나라 현재와 앞으로 펼쳐지는 미래를 보는 것 같아 흐뭇하다. 곳곳에서 선박들을 수리하는 노동자들의 모습들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1962년에 개항된 포항항에는 초계함 포항함이 위용을 자랑하며, 시선을 끌었고 국내 어시장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죽도시장이 여행자 발걸음을 유혹했다. 죽도(竹島)는 일본어로 다케시마다. 죽도라는 섬이 이곳에도 있는 것일까. 일본은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며,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지정해 공분을 사고 있다. 독도를 가려면 울릉도를 통해서 가야하고 울릉도를 가려면 동해와 이곳 포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가야한다. 독도는 포항에서 258.3km 떨어져 있다.
문득, 김교식 실화소설인 <아, 독도수비대>가 떠올랐다. 홍순칠은 일본인들로부터 독도를 지키기 위해 이곳 포항과 울릉도를 오가며, 물품을 실어 날랐다. 1953년부터 1956년 12월 30일까지 3년 8개월 동안 사재를 털고 청춘을 받쳐 독도를 지켰던 독도의용수비대장 홍순칠과 32인의 대원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해맞이해변공원 한쪽에 해양관광도시 포항이라는 표식과 또 다른 한쪽에는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철로 만든 조각 작품도 보였다. 제철회사가 가동되고 있는 도시라는 것을 알리려는 듯 철로 만든 조각상이 곳곳에 놓여 져 있었다. 작품으로 위로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곳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도 더 많은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은 공지영이 쓴 <의자놀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아픈 상처와 22명의 죽음을 부른 이 시대의 그늘진 다큐다. 경제신문이나 보수신문에서 연봉 5천만원을 받는 노동자들의 결성체인 노동조합을 귀족 노조라고 매도하고 있다.  마치 노동자들은 못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에게 배부르기 때문에 노조 활동을 한다는 식이다. 노동자들은 연봉 수 천 만원을 받으면 안 되고 기업 사장들은 배당금만 몇 억 몇 십억씩 챙기면서 성인이 안 된 자녀들에게 편법으로 돈을 돌려놓는 비정상에 대해 무감각한 시민들의 의식이 안타깝다. 내 주변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못한 나를 반성하며, 노동자들의 슬픈 현실을 알려내려는 공지영 작가가 존경스럽다.
바다 한 가운데 건물이 보였다. 영일대였다. 영일대 앞에 공원이 조성돼 있었다. 문득 대부해솔길에 설치한 낙조전망대가 떠올랐다. 3년 전 관광해양과장으로 일하면서 설치한 구봉도낙조전망대에는 ‘석양을 가슴에 담다’라는 조형물이 놓여 져 있다. 이곳에도 바다와 조화를 이룬 상징물이 설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제 밤새 바다를 밝혔을 오징어배들이 바닷가에서 춤을 추었다. 뭍에는 어부와 해녀들이 미역을 바다에서 건져 올려 리어카에 실고 있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부산 오륙도 부터 올라 온 해파랑길 표식이 포항에 들어서면서는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았다. 해안가로 길을 잡고는 다리를 쉬게 하는데 한 여행자가 배낭에서 먹거리를 꺼내 놓는다. 돼지갈비를 굽고 있다. 또 다른 여행자 손에는 소곡주가 들려 있었다. 여행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먹는 것 아닐까.
어느덧 영일만을 안내하는 도로표시판이 보였다. 오전 10시 전부터 4시간 이상을 걸은 다리가 묵직하다. 백반 한 상을 차려놓고 영일만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니 여행자들이 나에게 전염이 됐다며, 말을 걸어 왔다. “무슨 전염병이죠?” 라고 묻는 내 말에 한 여행자가 일어서서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을 읊조렸다.
2.23. 영일만에서 최경호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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