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라 <br>▲‘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br>▲‘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br>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
▲‘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영화 <노팅힐>에서 책방 주인인 윌리엄 대커가 인기 여배우인 안나 스콧에게 묻습니다. “샤갈 좋아해요?” “좋아해요. 사랑은 저런 거죠. 하늘을 나는 느낌!” 안나의 대답은 안나를 마음에 둔 대커를 풍선 마냥 하늘로 날아오르게 했죠.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오늘 밤 산타 할아버지가 가장 바쁘실테죠? 그리고 연인들, 가난하든 넉넉하든 어리든 나이 들었든 간에 크리스마스의 포인트는 누가 뭐래도 연인들 입니다. 흰 눈과 신뢰가 내려앉은 어깨와 어깨, 내일을 꼭 잡은 손과 손, 상대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지혜와 감성이 질주하는 도시를 둘만의 고요 속으로 옮겨 놓습니다. 화려한 쇼윈도의 불빛보다 사랑하는 연인의 눈이 더 찬란하게 빛나는 하루! 오늘은 사랑을 그린 화가 샤갈의 작품 <산책>입니다. 
“삶이 언젠가 끝나야 한다면 그것은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져야 한다” 사랑할 때,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는 말이 말만은 아닌 듯 합니다. 그림 속 벨라는 하늘을 둥둥 떠다니며,  샤갈을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연인을 잡아당기는 지구의 중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샤갈은 작품 속에서 자신을 주로 초록색으로 묘사합니다. 보세요. 초록이 뒤덮인 대지가 부풀어 오르고 그는 사랑하는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로 우리를 감염시키고 있습니다. 침실 창문만 열었는데 푸른 공기, 사랑, 꽃들이 그녀와 함께 들어왔다라고 말하면서요.
샤갈은 벨라루스 공화국 비테프스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대인이었지요. 샤갈의 재능을 발견하고 뒷바라지한 어머님의 헌신에 힘입어 스물 살 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그림을 배우러 갑니다. 그는 사진 수정작업 조수로 일하면서 간판 그리는 일을 했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이 그러하듯 샤갈도 이때의 경험이 이후의 작품 활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합니다. 1910년 유럽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오르피즘 등의 새로운 감각은 샤갈을 파리로 이끕니다. 그는 파리에서 환상적이고 공상적인 요소가 강한 자신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1915년, 평생의 뮤즈 벨라 로젠펠트와 결혼합니다. 그녀의 해박한 지식과 품격 있는 교양은 꿈꾸는 듯 향수어린 분위기와 아름다운 색채를 개성적으로 그린 샤갈의 그림을 탄생하게 하지요. 난해한 이론이나 해석을 요구하지 않고도 색채의 마술사라는 평을 받은 데에는 그의 가슴 속에 한 여인에게 품은 사랑의 언어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 노팅힐의 명장면을 다시 불러 봅니다. 평범한 대커 앞에 선 세계적인 여배우 안나가 이렇게 말하지요. “난 그저 사랑해 달라며, 한 남자 앞에 서 있는 여자일 뿐 이예요.”  우리시대는 ‘사랑’이 진부하고 통속적인 단어가 돼 그 생명력이 다해가고 있습니다. 사랑을 대체할 새로운 단어가 21세기에 태어날까요? 미미한 숨을 토하는 사랑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 주는 고귀한 크리스마스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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