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최경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2개월 만에 찾은 해파랑길은 낯설었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안산시민과 함께 했던 트레킹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로 아직도 16명이 차가운 바다에서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 발생 다음 날 진도 팽목항으로 내려가서 2주 동안 행정업무를 처리했던 몸과 마음이 힘들어했다. 살아오면서 가장 하루가 길었던 시간이 그곳에 있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눈물이 흘러내렸었다. 신경정신과 의사는 나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2개월 만에 해파랑길을 찾았으나 행동 뿐 만 아니라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오늘은 화진해변을 시작으로 장사해변과 삼사해상공원을 거쳐 강구항까지 18여km를 걷는 일정이다. 길고 길었던 포항구간을 끝마치고 드디어 영덕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포항 조사리는 햇빛이 내리 쬐였고 바다는 스쿠버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화진해변에 앉아있던 갈매기들이 이방인들의 발걸음에 놀라 하늘로 오르며, 군무를 펼쳤다. 아이들이 아빠와 두꺼비집을 만들고 있었다. 성인이 된 내 아이들도 나와 함께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두꺼비집을 만들던 때를 기억하고 있을까. 세월호 침몰사고가 난 후 많은 사물들이 세월호에서 희생된 아이들 그리고 가족들과 연계돼 떠올랐다. 이게 정부냐! 하는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회의와 한탄이다. 평소의 말과 웃음이 사라졌고 표정도 건조했다. 텔레비전을 보고 신문에 난 희생자들의 사연을 읽다보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런 모습이 어찌 나 뿐만 이겠는가. 여행자 모두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장사해변에 도착했다. 길었던 포항을 지나 이곳부터는 영덕이다. 휴게소에서 먹은 찌게백반이 그새 소화가 됐는지 배꼽시계가 울렸다. 장사상륙작전지 옆 무성한 나무숲 아래에서 각자 싸온 도시락을 펼쳤다. 오랜 만에 웃는다. 정겨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이래서 좋다. 점심을 먹고 나니 잠이 쏟아졌다. 숲은 시원했고 숲 밖은 땡볕이다. 오늘 영덕 기온은 33.9℃도 였다. 시원한 나무그늘 밑에서 한잠 잤으면 좋으련만 가야할 길이 있다.
누렇게 익은 보리가 땡볕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오늘은 34년 전 공무원을 시작한 날이다. 시대상황에 무디고 개념이 없었던 1980년 5월이 떠올랐고 2003년 공무원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깨끗한 공무원, 깨끗한 공직사회’를 슬로건으로 국토종단 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리고 공무원노조 활동했다는 이유로 하루 출근하지 않았다고 직위해제와 해임 당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울퉁불퉁했던 시간들이었다. 힘들었던 과정이었다. 길을 걸으면서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다가 올 날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원척마을을 지나니 구계항이 앞에 보였다. 이곳까지 오면서 울퉁불퉁한 평탄하지 않은길을 걸어왔다. 돌이켜보면 내 공직생활도 평탄하지 않았다. ‘아닌 것은 아니다.’ 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시간들이 많았다. 공직에 있던 전배들은 나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삼척 147km, 울진 82km 라고 써져 있는 표지판이 보였다. 점점 발걸음이 남에서 북으로 옮겨지고 있다. 해파랑길 끝 지점인 고성을 지나 동해안을 따라 백두산 자락으로 걸어 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오늘 트레킹은 혼자 걷는 시간이 많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날을 생각하면서 걷다보니 어느 덧 강구항이 보였다. 거리는 썰렁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영향을 받고 있는 듯 했다. 슬픔과 분노가, 회의와 한탄이 어디 안산과 진도에만 있겠는가?  대한민국 곳곳이 울음바다다. 
바닷물에 일렁이는 해경보트 그리고 해경파출소가 비어 있는 느낌이다. 해경 조직을 없애겠다고 전격 발표한 대통령은 책임이 없는 것인가? 트레킹을 하면서 보았던 해수욕장의 초소는 누가 지킬 것인가? 곧 피서철이라 물놀이 사고가 예상되고 있지 않은가? 보완하고 잘못한 사항에 대해서는 개선하고 책임을 물으면 될 터인데 진상규명도 하기 전에 조직을 없애버리면 어떻게 할 작정인가? 이 분노는 언제쯤 내 가슴에서 밀쳐낼 수 있을 것인가?  
(‘1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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