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ABC 의료 드라마 '그레이스 아나토미'에서 '크리스티나 양'은 입지전적인 캐릭터였다. 적극적이며 직설적이고 항상 1등만을 추구하는 인물.

하지만 시니컬한 유머를 장착하고 솔직함으로 무장한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외꺼풀 눈의 한국계 캐나다인의 매력으로 인기 캐릭터가 됐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시리즈의 주인공이 됐다.

샌드라 오(48)는 이 역으로 2006년 제6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드라마 부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13년 만에 제7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으로 이 시상식의 역사를 새로 썼다.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골든글로브 호스트와 수상자를 겸했다. 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LA) 베벌리힐튼 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BBC 아메리카의 TV드라마 '킬링 이브'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킬링 이브'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권태에 빠진 여자가 사이코패스 킬러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다. 드라마에서 샌드라 오는 MI5 첩보요원 '이브' 역을 맡았다. 이 역으로 지난해 9월 제70회 에미상에서 아시아계 배우 처음으로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브 역시 크리스티나처럼 주체적인 여성이다. 스파이 소설 마니아인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서류 작업이 시시하다. 그러다가 자신의 직관을 활용할 수 있는 거대한 일과 맞딱드리게 된다.

샌드라 오는 이처럼 의욕을 가지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여성들의 인간적인 매력을 살리는데 일가견이 있다.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알린 영화 '사이드웨이스'(2004)에서 맡은 섹시한 스테파니 역시 적극적인 여성이었다. 이듬해 미국 주간 '피플' 선정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들기도 했다.

 

'사이드웨이스' 감독 알렉산더 페인과 2003년 결혼한 뒤 3년 만에 이혼했지만, 그녀의 연기 경력에 장애물은 되지 않았다.

 한국 이름은 오미주다. 그녀의 부모는 서울에서 미국으로, 다시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오는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네 살 때부터 발레를 배우며 몸 쓰는 법을 익힌 그녀는 부모의 반대에도 열 살 때부터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여느 아시아인 부모들처럼 샌드라 오의 부모 역시 그녀가 공부를 통해 좋은 대학을 나와, 엘리트로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부모는 딸의 연기 열정를 말리지 못했다. 1991년 몬트리올 국립극장에서 본격적으로 연기수업에 돌입한 오는 캐나다에서 연기력을 인정 받은 뒤 1996년 LA로 진출했다.

HBO 시트콤 '알리스'에서 보여준 코미디로 이름을 알렸지만 다양한 작품으로 스펙트럼을 넓혀나갔다. '퍼더 테일스 오브 더 시티'의 사악한 기자, '빈'의 교활한 홍보대행업자 등을 맡으며 연기력과 스타성을 인정 받았다.

 

이날 골든글로브 수상을 예감하지 못한 표정으로 무대에 오른 오는 특히 수상 소감 마무리에 한국어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객석에 있던 부모를 향해 한국식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샌드라 오는 미국 코미디언 앤디 샘버그(41)와 함께 시상식 공동 MC를 맡아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아시아계 배우 최초 골든글로브 공동 사회자다. 시상식 초반 "솔직히 오늘 밤 이 무대 위에 서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여러분을 바라보고, 변화의 순간을 지켜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샌드라 오의 수상으로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가 더 부각될는지 관심사다. 지난해부터 북아메리카에는 아시안 바람이 거세다. 출연 배우 전원을 아시아인으로 채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북아메리카에서 3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등 아시아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미국 스릴러 영화 '서치'는 현지 한인 가정을 배경으로 했다. 한국계 배우 존 조가 주인공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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