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최경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세월호 사건 발생 후 멈췄던 트레킹을 다시 시작했다. 오륙도부터 함께 걸었던 발걸음 몇몇이 다시 길을 이어가자고 했다.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1년 2개월 만에 해파랑길을 찾았다.
안산시민들과 부산 오륙도에서 첫 발걸음을 떼고 마지막으로 강구항에서 뒷풀이했던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만나는 것이 삶이라지만 허전했다. 함께 웃으며 1년 동안 트레킹 했던 모습들이 아른거렸다. 
오늘은 강구항에서부터 영덕해맞이공원까지 걷기로 했다. 해안가는 여름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했다. 길은 해파랑길 20구간이라고 표시돼 있었으나 영덕블루로드라고도 했다. 파도가 밀려와서는 철썩 소리를 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나 바다는 그대로였다. 그저 파도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해맞이공원까지 5.4km 남았다는 거리표지판이 보였으나 해파랑길 표시가 보이지 않았다.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를 보면서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목적지에 다다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도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해파랑길을 찾아서 가기로 했다. 하저삼거리에서 산림생태문화체육공원으로 길을 잡았다. 바닷가가 아닌 산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발걸음을 잘못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돼 밭일을 하는 아주머니께 길을 묻고 또 물었다. “삶은 묻고 또 물으며 살아가는 것이다”고 말했던 친구가 떠올랐다.
산허리를 오르고 고개를 넘어 갈 때쯤 생태공원 표지판이 보였다. 산허리를 감아 도는 임도에는 어젯밤 비가 왔는지 빗물이 고여 있었다. 지난해 세월호 사건이 사람들 가슴에 응어리를 남겨 놓았다면 올해 최대 화두는 메르스와 가뭄일 것이다. 메르스는 상인들의 가슴을 후벼 팠고 가뭄은 농민들의 가슴을 타들어 가게 했다. 생태문화체육공원은 인기척이 없어 고즈넉했다. 
영덕생태문화체육공원 한쪽에 가족 관광객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해안가로 이어 진 해맞이공원으로 터벅터벅 걸어 내려갔다. 그곳은 오래 전 산불이 났었는데 영덕군에서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공원으로 조성한 곳이다. 사람들은 불에 탄 숲을 울창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동안 시민들과는 당일 트레킹을 한 후 안산으로 돌아왔지만 이제부터는 직장동료들과 트레킹을 하기 때문에 시간과 경제적인 사항을 고려해서 1박을 하기로 했다. 내일까지 목적지는 고래불해수욕장으로 조정했다. 그러니 오늘 숙소와 저녁 식사 장소를 정해야 한다. 여행하면서 낮선 곳에서 특히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숙박할 곳을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오보해수욕장을 지나면서 민박을 물었으나 대부분 민박집에서는 아직 철이 일러서 손님 맞을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있는데도 여행자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바닷가에서 막 채취한 성게 값을 흥정하고 있었다. 만선의 배들이 기세 좋게 포구로 들어오기도 하고 아직 조업을 해야 할 형편의 배들은 바다를 휘젓고 있었다. 팔팔하던 여행자들의 발에도 힘이 빠져 있었다. 멈춰 선 곳은 경정2리였다. 호텔이 보였다. 2층에는 음식점이 있었지만 영업을 하지 않았다. 가격을 흥정해 온돌방을 5만원에 얻었다. 그곳에서 택시를 불러 강구항까지 가려면 3만 5천을 지불해야 했다. 강구항에는 안산에서부터 타고 온 승용차가 있기 때문이었다. 자연산 횟집 문을 두들겼다. 두들기면 해결되리라!. 그곳에서 식사를 하는 조건으로 횟집사장님 차를 빌려 타고 강구항에 가서 승용차를 가져오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회를 오물거리는 맛이 좋다. 함께 정담을 나누는 이야기꽃이 화기애애하다. 파도가 육지로 밀려왔다가 바다로 유영했다. 
문득 ‘나는 나에게 속했다.‘ 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혈연이나 지연, 학연이 없을 수 없지만 그 자체가 심해 우리는 늘 연(聯)의 폐해를 이야기 하면서 살고 있다. 나는 나에게 속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새벽에 창문을 여니 일기예보와는 달리 다행스럽게 비가 오지 않았지만 하늘은 흐려 있었다. 서둘러 밖으로 나와서 경정해수욕장을 지나 고래불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저 멀리 등대가 보였다. 죽도산전망대였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에는 해송이 뿜어내는 빛깔과 향내가 머리를 맑게 했다. 문득 시가 쓰고 싶어졌다.   

        등대로 걸어가며

희망이란 
등대가 밤새 깜빡깜빡 불을 밝히고 있다는 말
희망이란 
그 등대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간다는 얘기
희망이란 
그 등대에게로 
한 발 한 발 다가간다는 얘기
희망이란 
등대에서 
걸어 온 길을 바라본다는 얘기

죽도산전망대는 해파랑길 21구간에 놓여 있었다. 축산면 시내와 축산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시원했다. 빗방울이 흩날렸다. 오늘은 전국에 많은 비를 뿌린다고 했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축산항 주위를 걸어 시내로 들어오니 마라톤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오늘이다. 
여행자들이 서 있는 곳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겠다싶어 고래불해수욕장까지 가기로 했던 발걸음을 멈췄다. 짧은 1박2일 해파랑길 20구간 여행길은 현재를 마주하고 있는 일들을 다른 시각으로 눈여겨보고 앞으로 다가 올 그림을 상상하며 걸어가는 길이었다. 30km를 걸었지만 멈춰있던 목표를 향해 다시 몸을 일으켰다는데 의의가 있고 내 마음은 충족한 시간이었다.
부산 오륙도부터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42km를 걷는 해파랑길.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궤도를 수정하며 목표한 길을 끝까지 걸어야 한다. 산다는 것도 그렇게 한 발 한 발 내 딛는 것이 아닐까?
2015. 7.12. 영덕 축산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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