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박 5일간의 베트남 방문 을 마치고 2일(현지시간) 베트남 랑선성 동당 역에 도착해 평양행 전용 열차에 오르기 전 환송 인파에 인사하고 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박 5일간의 베트남 방문 을 마치고 2일(현지시간) 베트남 랑선성 동당 역에 도착해 평양행 전용 열차에 오르기 전 환송 인파에 인사하고 있다.

 

지난달 23일부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귀국길에 올랐다. 김 위원장은 65시간 열차 여행, 정상회담 결렬, 집권 후 최장기간 외유 등으로 많은 화제를 남겼다. 

◆ 화려한 입성 
2019년에 벌어진 사회주의 국가 최고지도자의 열차 대장정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됐다. 북중 접경지역인 단둥에 진입해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26일 도착할 때까지 김 위원장 전용열차가 주요 도시를 지날 때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 관련 영상이 올라왔다. 중국 난닝역에 잠시 멈춰 휴식을 취하는 모습까지 관심을 끌었다. 
베트남 정부는 1964년 이후 55년 만에 방문하는 ‘혈맹’ 국가의 최고지도자를 성대히 환영했다. 동당역 승강장에서부터 역전까지 레드카펫이 깔리고, 군악대 연주가 울려퍼졌다. 모여든 군중들은 인공기와 금성홍기를 같이 들고 흔들었다. 김 위원장은 방탄차의 창문을 내려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입성 첫 일정으로 북한대사관을 찾아 분위기를 고취시켰다. 김 위원장이 북한대사관에 도착하자 “만세”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 사상 초유의 정상회담 결렬 
2차 북미 정상회담 마지막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전날 단독회담과 친교만찬에서 신뢰를 재차 확인하고 ‘성과’를 예상했던 두 정상은 다음날 확대회담까지만 하고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두 정상이 ‘하노이선언’에 서명하기로 약속한 날 일주일 전부터 막바지 의제 실무협상이 진행되며 ‘접점’을 찾은 것으로 관측됐기에 사상 초유의 정상회담 결렬 사태 충격은 적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이번 비핵화 담판에 부담을 느끼고 있음을 읽을 수 있는 장면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그는 북한대사관 방문 이후 약 24시간을 숙소에 머물렀다. 트럼프 대통령을 8개월 만에 만나러 가는 길에 자신의 차에서 담배를 물었다. 원탁에 나란히 앉아 덕담을 주고받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는 차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 베트남 친선방문 일정을 시작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국과주석과 환영연회를 가졌다고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일 보도했다. (출처=노동신문)

 

◆ 높아진 제재완화 허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결렬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이 영변 핵시설 해체를 카드로 사실상 전면적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변 핵시설도) 굉장히 큰 것이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해체’ 카드로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해체’는 동결과 사찰, 불능화 등이 이뤄진 후에 진행되는 최종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은 대규모지만 이것만을 해체하는 것은 미국이 원하는 모든 비핵화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협상 레버리지를 쉽게 버릴 수 없었다. 북한이 추가적인 비핵화를 해야 그것(제재 완화)이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북미는 비핵화 협상이 ‘종전선언-핵시설 신고’ 프레임으로 교착상태에 빠지자 ‘영변 핵시설 폐기-제재 완화·해제’ 프레임으로 판을 키웠다. 그러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이마저 동력을 잃게 됐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은 지 약 11시간 뒤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내세워 직접적인 대미 메시지를 던졌다. 리 외무상은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는) 조미 사이의 현 신뢰수준을 놓고 볼 때 현 단계에서 우리가 내짚을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라며 “앞으로 미국 측이 협상을 제기해오는 경우에도 우리 방안에는 변함없을 것”이라고 맞섰다. 
북한은 지난해 핵-경제 병진노선을 버리고 경제총력노선을 새롭게 채택하며 경제 발전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포괄적 대북제재 속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 특히 오는 2020년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성대하기 치르기 위해서는 조속히 제재 완화를 끌어내야 한다.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민생’ 제재만 해제해달라고 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정영태 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정은은 풍계리 핵실험장, 미사일실험장 폐기, 영변까지 흘리면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제재가 강화됐다”며 “이번에도 똑같은 트랙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 ‘은둔’ 이미지 한 꺼풀 더 벗은 北 지도자 
김 위원장의 이번 베트남 방문 타이틀은 2개다.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공식 친선방문.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귀국한 다음날부터 공식 친선방문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김 위원장이 집권 후 방문한 곳은 중국, 그리고 한국의 판문점, 마지막으로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싱가포르다. 이또한 지난해부터였다. 이전까지 김 위원장은 정권을 세습해 ‘공포통치’로 실권을 장악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을 일삼는 은둔의 지도자로 비쳤다. 
그러나 이번 베트남 방문은 철저하게 분리했다. 물론 두 이벤트 모두 하노이에서 열리긴 했지만, 김 위원장은 현지 동선을 철저하게 분리했다. 특히 지난 1일부터 이날까지 진행된 베트남 공식 친선방문 일정에서는 ‘양자 관계’에 집중했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1958년 베트남 방문 때처럼 대중연설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혈맹’을 방문한 정상국가의 모습을 최대한 연출했다. 귀국길에 오르기 위해 동당역에 도착해서는 방탄차에서 내려 모여든 군중에게 한참 손을 흔들었다. 

▲ 북한 노동신문은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차 북미정상회담 소식을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출처-노동신문)

▲ 북한 노동신문은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차 북미정상회담 소식을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출처-노동신문)

 

◆ 북-베트남 ‘도이머이’ 협력 초석 다져 
김 위원장의 비핵화 담판과는 별개로 움직였던 수행원들도 눈길을 끌었다. 당중앙위 부위원장인 리수용 국제부장, 김평해 간부부장, 오수용 경제부장,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등은 유명 관광지 하롱베이, 항만·산업도시 하이퐁 등을 찾아 주요 인사들과 오·만찬을 함께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 직전이던 순간에도 하노이의 한 고급 식당에서 오찬을 하며 예정됐던 현지 시찰 일정을 소화했다.
이들이 다녔던 곳은 당초 김 위원장이 방문할 것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곳이다. 그러나 북한은 ‘비핵화 담판’과 무관하게 경제 협력을 모색하기 위한 현지 일정을 소화하면서 베트남과의 양자 관계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모든 분야에서 협조와 교류를 정상화하고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일 보도했다. 
또한 베트남 언론인 VN익스프레스는 김 위원장이 응우옌 쑤언 푹 총리와의 면담에서 베트남의 경제 발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베트남의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머이’의 경험을 전수받을 의향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체제 유지를 위해 ‘개방’보다는 ‘개혁’에 초점을 맞출 거라는 관측이다. 
혈맹 관계였던 양국은 베트남이 한국, 미국 등과 수교를 맺으면서 소원해졌다. 또 북한의 핵무력 도발과 김정남 살해 사건 등으로 냉각기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김 위원장의 공식 친선방문을 계기로 관계를 회복하게 됐다는 평가다.

저작권자 © 경기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