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카자흐스탄의 기후를 이겨내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만일 그곳으로 이주해 간다면 어린아이들은 반드시 모두 죽을 것이다

연해주 수이푼 지역에 살던 박 안드레이가 한 말이다. 1937, 중앙아시아로 이주하라는 통보를 받은 러시아 한인(고려인)들은 지역마다 모여 방안을 논했다. 예고된 이주 일정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벼 수학을 앞둔 때였다.

러시아 당국은 보상과 새 거주지에서 받을 생활 지원을 말했지만, 고려인들은 극동지역을 떠나 이주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가축수송칸에 올라타다

1937821, 고려인 강제이주 명령이 발표된다. 완료 예정일은 이듬해 11. 3개월도 되지 않은 기간 안에 수십만 명의 고려인을 수십 킬로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옮겨야 하는 일이다. ‘신속한집행이 요구됐다. 고려인들은 일주일, 짧게는 이삼일 전에 이주 소식을 들어야 했다. 짐을 쌀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막대한 자금과 차량이 신속히 확보되어야 했으나, 불가능했다. 고려인들을 낡은 열차 가축수송칸에 올라탔다.

중앙아시아에 도착하기까지 한 달여를 추위와 허기에 시달렸다. 식량배급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메마른 벌판을 몇날며칠 달리던 기차가 멈추면 식량과 식수를 구하려 사람들이 내달렸다. 혹독한 환경에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정차한 틈을 타 주검을 버렸다.

지금도 묫자리를 만들고 성묘를 하는 전통을 유지하는 고려인들이다. “우리 할아버지 목수였는데 매일 관을 만드는 일만 하셨어요. 사람들 많이 죽어서.” 낯선 땅에 도착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과제였던 그때에도 관을 짜서 사람을 떠나보냈다. 자신들끼리 고려말 사투리라 부르는, 그 옛말을 쓰는 고려인들은 죽음을 가리켜 돌아갔다고 했다. 그런 이들이 달리는 열차에서 친지의 시신을 내버려야 했다. 잔혹했다.

낯선 땅에서 매일 관을 짜다

카자흐스탄은 양을 많이 기르던 나라인데, 목동이 양을 끌고 가다가 보니, 해도 안 떴는데 없던 산이 하나 있더래요. 나뭇가지로 쳐보니 산이 움직이더래요. 사람이었던 거예요. 카자흐스탄은 추우니까. 애들 여자들 노인들을 가운데 두고, 체격 좋은 사람들이 겉을 감싸서 산이 된 거예요

과장된 것으로 보아, 고려인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인 듯하다. 고려인들에게 중앙아시아에서의 삶이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최 멜리스 씨로 우즈베키스탄 출신이다. 매일 관을 짰다는 목수가 그의 할아버지다.

잔뜩 자란 갈대숲이었데요.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서 사나 걱정하다가, 갈대를 베고 또 베고. 처음에는 땅속에서 살았어요. 땅굴 파서

땅굴이라 표현한 토굴 가옥이 당시 기록에 따르면, 5만 개였다고 한다. 러시아 고려말 신문 <레닌 기치>에서 강제이주를 다룬 기사 일부를 가져와 본다.

시체를 관에 넣어서 매장했는데 쓸 나무도 없었다. 특히 토굴집의 습기가 어린아이들에게 죽음을 가져다주었다” (198953일자 기사)

이주 초기 토굴을 파서 거주지를 마련했다. 소련 당국은 정착지에 가면 가옥과 토지가 무상으로 지급될 것이라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 머물 집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기록을 여럿 확인한다.

현지(공화국)에서는 이주 전담부서까지 조직했지만, 카자흐스탄에 이주한 고려인 가구가 2, 우즈베키스탄에는 16천 가구였다. 대혼란이었다. 인터뷰한 고려인 3,4세가 전해준 조각난 이야기들을 모으면 “4월에 풀이 나기 시작하면서 뜯어서 삶아 먹고”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그렇게 연명했다.

보상과 지원이 가능하지 않은 대규모 이동이었다. 사람을 옮기는 일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다른 것은, 그러니까 그 과정에서 사라질 목숨 같은 것은 부차적인 일이었다.

앞서 언급한 <레닌 기치>의 기사는 이어 이리 말한다.

겨우 모든 것을 이겨낸 사람들은 첫 콜호즈를 조직하였다

콜호즈(kolkhoz)는 농업집단화를 통해 만들어진 농장을 뜻한다. 황무지가 벼가 자라는 농토로 바뀌어갔다. “나뭇가지로 땅을 파서 쌀농사를 지었다그렇게 정착이 시작됐다. 소비에트 공화국이 원한 바였다.

기록노동자 =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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