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과 버블(Michael Jackson and Bubbles)                                                  그림출처 = 구글
마이클 잭슨과 버블(Michael Jackson and Bubbles) 그림출처 = 구글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그는 1958년생이었다. 2009년 6월, 의혹 많았던 여러 추정을 뒤로하고 ‘심장마비’를 공식 원인으로 사망했다. 7살 때, 잭슨 파이브라는 그룹의 멤버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사망 직전까지 최고의 미국 싱어 송 라이터로 인기를 누렸다. 디스코, 록, 오페라, 펑크(funk), 뉴 잭 스윙 등의 다양한 양식을 소화해 자신만의 개성적인 음악으로 ‘king of pop’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무대 위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그의 춤, 문워크(moonwalk)는 쉰 살을 넘긴 그를 항상 십대로 기억하게 했다. 마지막까지 십대의 삶을 산 그는 마이클 잭슨이다.”
누군가를 떠 올렸을 때, 대표되는 이미지가 곧 그를 상징합니다. 이 문장을 미술작품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것이 나올까요?
제프 쿤스(Jeff Koons 1955~ )는 1988년 ‘진부’라는 시리즈에서 ‘마이클 잭슨과 버블(Michael Jackson and Bubbles)’이라는 작품으로 그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이탈리아의 뛰어난 도자기로 만든 이 작품은 잭슨의 화려한 의상과 짙은 마스카라를 매끄럽고 반짝이게 보여줍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금박 입은 잭슨의 실루엣에는 시선을 거북하게 하는 유치함과 가벼움이 있습니다.
팝의 황제는 어느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 시선으로 미소도 침묵도 아닌 표정입니다. 두터운 화장 밑에 백반 증으로 얼룩진 그의 맨 얼굴 때문일까요?
자신 내부의  예술성이 그저 대중의 소비재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일까요?
슬픔마저도 희화화 한 듯, 그가 안고 있는 금박의 원숭이만이 붉은 입술로 웃고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을 ‘팝의 황제’라고 하듯 제프 쿤스는 ‘키치의 제왕’이라고 합니다.
키치(kitsch)라는 말은 천박하고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 생산된 싸구려 상품을 이르는 말입니다.
독일어로 ‘싸게 만들다(verkichen)’에서 나왔습니다. 그의 작품은 천박합니다. 현대를 상징하는 비예술적인 사물들과 비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합니다.
표면은 반짝이며 하늘로 치솟은 빌딩처럼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합니다. 허세와 과시가 풍겨 나옵니다. 품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유명인이나 유명작품을 패러디 합니다. 직접 제작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던지면 공장에서 만들어 냅니다.
포르노와 다를 바 없는 성적 메타포, 돈과 다이아몬드, 욕망에 대한 동경 등은 인간의 소비적, 현세적 욕망을 부추깁니다.
그는 양궁장의 과녁처럼 집중된 힐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중들이 환호했습니다. 평론가들의 혹평과 냉대에도 불구하고 <Balloon Dog Orange>는 약 5,800만 달러에 판매되었습니다.
전통의 상징이었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초대형 전시회가 열렸고 방문객은 전통의 공간을 습격한 포스트 팝의 위용에 놀랐습니다.
9.11 테러가 있었던 세계무역센터 맞은편에는 <벌룬 플라워> 작품이 따뜻하게 상처를 보듬었고, 메이시 백화점에는 깡총깡총 동화의 세계를 안내할 은색 토끼 <래빗>이 아이들을 반겼습니다.
 화가는 그리려고 하는 대상을 직접 보면서 그리기도 하고 때로 생각 속의 관념을 그리기도 합니다.
이는 그리려고 하는 대상을 관찰하느냐, 본질을 이해하고 그것을 표현하느냐의 차이지요.
홀대와 무시에도 대중에게 살아남은 제프 쿤스의 작품은 기술일까요? 예술일까요?
서로 다른 예술 가치들이 충돌하고 융합하면서 경계를 넘어서는 기회일까요? 그저 과시하고 싶은 마음의 빈곤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달콤한 마케팅일까요?

저작권자 © 경기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