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적도 破寂圖> 그림출처 = 구글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Zenon)은 “움직이는 것은 사실 정지해 있는 것과 같다”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했습니다. ‘제논의 역설’이라고 하지요. 철학자의 예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트로이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거북이가 경주를 합니다.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보다 10배 빠르니 접바둑을 두듯 느림보 거북이는 100m 앞에서 출발했습니다. 아킬레우스가 100m 달리면 거북이는 10m 앞에 가 있습니다. 아킬레우스가 10m 더 달리면 거북이는 1m 앞에 가 있습니다. 아킬레우스가 1m 더 달리면 거북이는 0.1m 앞에 가 있겠지요. 이렇게 간격은 줄일 수 있지만 결코 따라잡을 수는 없다고 했지요. 그럼 아래 그림을 보고 고민해볼까요?
정조가 김홍도에 버금간다고 인정했던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이 그린 <파적도 破寂圖)입니다. ‘고요함을 깨뜨리는 그림’이니 무슨 사연일까요? 우리 그림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오며 읽습니다. 먼저 오른쪽 위, 화들짝 놀란 안주인이 보입니다. 어깨는 잔뜩 긴장되어 있고 두 손은 허공을 가릅니다. 속바지 밑의 맨발은 금방이라도 마당으로 내달릴 것 같습니다. 그 앞, 영감님은 탕건이 벗겨지고 자리틀이 쓰러졌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긴 장죽으로 고양이를 잡으려 몸을 날립니다. 거의 허공에 떠 있군요. 아, 그런데 요 고양이 보세요. 아주 여유 있습니다. “나 잡아봐라”하듯 영감님을 쳐다보고 있네요. 입에는 병아리 한 마리를 물고 있군요. 대각선으로 이어지는 구도는 단숨에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쏟아 놓습니다.
툇마루 밖, 나무에 새싹이 돋고 나뭇가지가 쭉쭉 기지개를 펴고 있으니 ‘봄날 오후’인가 봅니다. 물기없이 뽀송한 앞마당에서 암탉은 병아리들과 땅바닥을 후비고 있었겠지요. 적당한 벌레가 잡히길 기대하면서요. 오래 익어온 부부는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말없이 돗자리를 짜고 있습니다. 마당에 뒹구는 햇빛도 꾸벅꾸벅 좁니다. 순간, 어디선가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도둑고양이가 병아리 한 마리를 잽싸게 낚아챘습니다. 다른 병아리들은 경기를 일으키듯 날개를 파득거리며 도망갑니다. 왼쪽 아래 병아리는 거의 실신 상태네요. 암탉은 새끼를 잃을까 눈이 시뻘개져 홰를 치며 고양이를 쫒아갑니다.
영감님이 고양이를 잡으러 담뱃대를 휘두르자 낙상이 무서운 안주인은 영감님을 붙잡으려 하고, 암탉은 날개를 펴고 고양이를 향해 뛰어가는 찰나입니다. 영감님과 암탉은 고양이에게서 어린 새끼를 구해낼 수 있을까요? 제논의 역설이 타당한가는 이 시점에서 논외로 하고 고양이보다 빠르게 대문을 막아서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고양이의 느물거리며 여유 있는 ‘야옹’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렇게 생활 속에 역동감 넘치는 장면을 포착한 김득신은 조선 정조 때의 화가입니다. 4대에 걸쳐 20여명의 화가를 배출한 개성 김씨 가문의 기대주였고 19살에 의궤작업에 참여할 정도로 발군의 기량을 보였습니다. 이후 정조의 어진에도 함께 했지요. 인물, 산수, 영모를 모두 잘 그렸는데 특히 속화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습니다. ‘생활의 때’가 묻은 그의 속화는 김홍도와는 다른 결을 보여 줍니다. 마치 나레이션이 있는 드라마처럼 그림 속 배경이 친절하지요.
그의 작품 <풍죽도>와 <매화> 쌍폭은 일본에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 미술사는 일본을 식민지로 하지 않는 한 온전히 쓸 수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국보급 문화재들의 다수가 일본에 있다는 말이지요.
그의 작품이 돌아와 기승전결이 있는 미술사가 쓰이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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