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다민 가에 있는 화가의 작업실> 출처 = 구글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버스가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합니다. 승객들은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립니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여학생들이 한 다발 올라탑니다. 꽃들을 키우는 학교에서 점심으로 쑥떡을 주었는지 삼삼오오 서서 쑥덕쑥덕합니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바짝 마른 버스에 통통 튑니다.
그때, 귀에 꽂히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넌 우정이 뭐라고 생각해?”, “...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는 것.”하는 대답이 들립니다. 그러자 질문을 던진 여학생이 “난 친구가 잘 됐을 때, 내 일처럼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합니다. 엿듣던 귀가 부끄러워 빨개졌습니다. 우정이란 친구가 슬플 때, 같이 슬퍼하고 기쁠 때 내 일처럼 기뻐해 주는 것이라는 걸 어린 학생이 가르쳐 줍니다.
합리적, 효율적, 이성적이라는 산업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과 ‘예술’은 왠지 거리가 있어 보이지요? 돈을 벌기보다. 자신의 방법대로 세상을 창조하고 싶은, 또는 표현하고 싶은 내적 욕구에 더 충실한 사람들이었던 예술가들은 그래서인지 대부분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친구들을 위해 자신의 돈과 여유를 나누었던 화가 프레데리크 바지유(Frederic Vazille, 1841~1870)를 인사 시킵니다. 오늘은 그의 작품 <콩다민 가에 있는 화가의 작업실>입니다.
바지유의 화실에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꽤 널찍한 공간이네요. 오른 쪽 모서리에는 빨갛게 달구어진 난로가 보입니다. 겨울인 게지요? 시선을 밀면 피아노 치는 남자가 있습니다. 당시 뜨는 음악가 에드몽 메트로입니다. 그의 등 쪽엔 분홍색 소파가 있고 커다란 이젤 주위엔 세 명의 남자가 서 있습니다. 이젤 바로 앞에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신사는 에두아르 마네입니다. 그 뒤, 클로드 모네는 담배를 물고 있군요. 시선을 왼쪽으로 움직이면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계단에 서 있는 남자는 에밀 졸라입니다. 테이블에 앉아 그를 쳐다보고 있는 신사는 오귀스트 르느와르입니다. 그럼 우리의 주인공은요? 네, 가운데 키다리 아저씨가 바지유입니다. 이 그림은 바지유가 그렸지만 자신의 모습은 존경했던 마네에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확대해 자세히 보면 바지유의 모습만 붓 터치가 다른 걸 알 수 있습니다.
바지유의 아버지는 부유한 와인판매상이었습니다. 프로테스탄트였고 예술가들을 후원하기도 했지요. 아버지는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들라크루아의 <알제리의 여인>을 본 바지유는 그림에 빠져 듭니다. 화가가 되길 간절히 원했던 바지유는 아버지를 설득했고 의학공부를 병행하는 조건으로 그림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샤를 글레르’ 화실에서 공부하면서 동년배인 르누아르와 모네, 시슬레 등과 곧 친구가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바지유는 친구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미술 재료를 사 주고, 친구들의 술값을 지불하고, 작업실이 마땅치 않은 르느와르와 모네가 자신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배려 합니다. 심지어 모네가 아들에게 줄 분유도 사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빈곤에 시달릴 때, 그는 모네의 그림을 비싼 가격에 사 줍니다.
그들은 가난과 사회적 몰이해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과 깊은 우정으로 뭉쳐 있었습니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새로운 예술을 펼치고 싶은 젊은 청춘들의 구순한 대화가 들려올 듯합니다. 가슴 따뜻했던 그는 스물아홉이던 1870년, 보불전쟁에 참전해 전사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이 그림 속 화실의 친구들은 ‘인상파’로 불리며 그가 맞이하고 싶었던 시대로 성큼 나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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