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출처 = 구글
'장례식' 출처 = 구글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사방에 부패하고 상한 ‘죽음’이 있습니다. 널려있는 절망과 비참함 속에 지리멸렬한 삶이 숨 쉽니다. 종달새는 이곳에 날아 와 울지 않습니다. 물기라곤 없이 말라비틀어진 세상입니다. 비명과 울음이 도시의 벽돌과 벽돌 사이에 새어나옵니다. 세계는 1차 대전이 끝났고 20여 년 만에 다시 2차 대전을 맞았습니다. 쉴 새 없이 누군가의 손목이 날아갔고 목도 날아갔습니다. 후방에 있는 어린 아이들은 만연한 위험에 시름시름 앓다 죽었고, 전방에 있던 청년들은 쥐가 끓고 진창이 된 참호에서 발이 썩어 들어가 죽었습니다. 신은 자비의 손을 거두었습니다.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1928~1999)는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10년 전, 프랑스 파리 북부 변두리인 바티뇰(Les Batignolles)에서 태어났습니다. 변두리의 삶이 그렇듯 무언가가 늘 부족했고 그중 가장 부족했던 건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소심하고 예민한 성품이었던 베르나르가 변두리의 문제아로 자라지 않고 예술가가 된 것은 그의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사랑 깊은 어머니는 그림에 대한 아들의 재능을 일찍 알아보았습니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그의 손을 잡고 루브르 박물관에 갔습니다. 이곳에서 문명사의 빛이 되었던 수많은 대가들, 렘브란트와 다비드와 장 그로가 뷔페의 가슴에 평생 동안 꺼지지 않는 불씨를 던졌습니다. 그는 예술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였고 피카소로 대변되는 도도한 추상회화의 파고가 높을 때, 피골이 상접한 20세기를 기록하는 구상화가가 되었습니다.
1940년 6월, 프랑스 파리는 나치에 점령당했습니다. 미래와 자유가 묶인 암담한 파리에서 뷔페는 곤충과 식물 그림에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회화실력을 높이 산 드로잉 선생님의 격려에 힘입어 열다섯의 나이로 파리의 국립미술고등학교인 ‘에꼴 데 보자르’에 합격합니다. 하지만 4년 뒤, 한결같이 그를 응원하였던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사망합니다. 그는 돛대 없는 배처럼 헤매었습니다. 그리고 에꼴 데 보자르에 돌아가지 않고 혼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그림이 담고 있는 어둡고 날카롭고 앙상하고 비루한 덧없음은 시대와 자신 내면의 상처에 바르는 옥도정기이자 반창고였는지 모릅니다. 그의 떨리는 손이 느껴지는 작품 <장례식>을 보시겠어요?
종이를 반듯하고 정확하게 잘라 붙인 듯 납작하고 숨 막히는 공간입니다. 문은 모두 닫혀있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 모두 회색과 어두운 황색입니다. 산 자는 아무도 오지 않고, 산 자들의 그림자들이 모여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있는 듯합니다. 비통함이 스며들까 두려워하듯, 모여 있는 그림자들은 서로 소통하지 않습니다. 하늘에 닿을 듯, 오른쪽에 이어진 선들은 지상을 떠난 자들이 오래도록 걸어가야 할 먼 길 같습니다. 뷔페는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보았던 걸까요?
만개한 꽃과 과실에서 썩어가는 부패의 냄새를 맡았던 바니타스의 정물화처럼, 미래의 풍요를 담보로 벌어진 전쟁터에서 현재를 향해 상실과 소외의 방아쇠가 당겨졌음을 알리고 싶었던 걸까요?
우리에게 <80일간의 세계일주>로 유명한 작가, 쥘 베른은 1869년에 <해저 2만 리>를 출간합니다. 인간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깊은 해저에 푸르른 인광을 번뜩이며 고래보다 빠른 속도의 괴물이 목격되지요. 네모선장과 잠수함 ‘노틸러스’호는 ‘살아있는 수수께끼’를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말하지요. “내가 상대하고 있는 녀석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이 어둠 속에서 쓸데없이 내 배를 위험에 빠트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뷔페는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녀석이 누구고,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죽음보다 더 허무한 것은 삶을 무표정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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